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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더트 :제닌 커민스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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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더트 : 제닌 커민스 장편소설
서울 : 쌤앤파커스, 2021.
613 p. ; 21 cm.


  소장사항 : 을지대학교 학술정보원[대전] [ 823.92 C971a노 ]

등록번호 소장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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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046977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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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인터파크 바로가기

★ 《뉴욕타임스》,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 ★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이 선정한 최고의 소설 ★ 영화화 확정, 〈블러드 다이아몬드〉 찰스 리빗 각본 나는 그들과 함께 학살의 현장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고, 피 말리는 선택의 순간에 고뇌했으며, 열차의 지붕 위에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작품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 오프라 윈프리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페이지 터너의 탄생! 팽팽한 긴장 속에 도저히 다음 순간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작품. - 존 그리샴 카르텔이 벌인 잔혹한 살육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두 모자 그렇게 시작된 목숨을 건 여정과 우연히 알게 된 그날의 비밀은……! 리디아의 조카이자 대녀의 열다섯 살 생일을 축하하는 성인식인 킨세아네라 현장에 들이닥친 세 명의 괴한. 그들은 얼음이 담긴 잔에 맺힌 이슬이 채 마르기도 전에 열여섯 명의 가족을 싸늘한 시신으로 만든다. 리디아는 총성이 멈춘 뒤 발견한 남편 세바스티안의 시신 위에서 “나 때문에 내 일가족이 죽었다”는 메시지를 발견한다. 그 순간 리디아는 기자인 남편이 쓴 카르텔에 대한 기사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리디아는 사랑하는 열여섯 명이 순식간에 쏟아진 냉정한 총알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에, 남편의 시신이 대부분 온전하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들은 가슴에 마테체를 꽃아 팻말을 달아두었을 수도,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더는 사람의 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을 훼손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멀쩡하게 죽였다는 것은 카르텔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기형적 친절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장에 도착한 형사는 “제가 살아 있다는 걸 알면 다시 사람을 보낼 거”라는 리디아의 말에 배후가 누구인지 정확히 아느냐고 묻는다. 그는 이 참혹한 상황에서 농담을 하자는 것일까? 아카풀코에서 이 정도 학살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하비에르 크레스포 푸엔테스. 이 도시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인지 다들 알고 있다. 입 밖으로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을 뿐. 리디아, 이제는 당신 손에도 피가 묻었군. 당신과 나의 고통을 정말로 유감스럽게 생각해. 우리는 이 슬픔으로 영원히 하나가 되었어. (…)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 영혼의 여왕이여. 당신의 고통은 금방 끝날 테니. 하비에르 (81쪽) 사건 직후 은밀히 피신해 있던 곳으로 날아든 하비에르의 편지. 그는 리디아가 어디에 있든 결국 찾아낼 것이다. 그렇기에 당장 루카를 데리고 사라져야 한다. 지금 당장. 아카풀코를 떠나야 한다. 그가 절대 찾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리디아를 “영혼의 여왕”이라 불렀던 하비에르. 그들의 관계는 왜 이렇게까지 파멸에 이르게 되었을까. 세바스티안이 하비에르에 대한 기사를 쓴다며 걱정했을 때도 아무 일 없을 것이라 장담했건만. 매 순간 목숨을 건 선택이 이어지는 엘 노르테를 향한 여정에서 알게 된 그날의 진실은 리디아를 깊은 슬픔과 두려움, 분노에 빠트리는데……. 라 베스티아, 즉 “짐승”이라 불리는 난민 열차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게 된 리디아와 루카의 앞날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두 모자는 목숨을 건 여정 끝에 “아메리칸 더트(미국 땅)”를 밟을 수 있을까. 이주자의 손녀이자 이민자의 아내로서 바라본 현실, 놀라운 흡인력으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스토리텔링!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타임》, 《USA투데이》, 《시카고트리뷴》, 《LA타임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보그》, 《마리끌레르》, 《엘르》, 《에스콰이어》… 수많은 매체의 ‘원픽’ 소설! 《아메리칸 더트》의 저자 제닌 커민스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주자의 손녀이자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의 아내이기도 하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중남미 난민들을 둘러싼 선입견 뒤에 존재하는, 그동안 간과되어 온 한 사람, 한 사람에 주목한다. 특히 《아메리칸 더트》를 통해 난민 중에서도 여성과 어린아이들이 겪게 되는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라 베스티아에서 맞이할 수 있는 죽음의 형태는 모두 다 끔찍하다. 기차가 커브를 돌 때 움직이는 두 화물칸 사이에 떨어져 으스러질 수 있다. 잠이 들었다가 기차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바퀴 사이에 끼어 다리가 잘릴 수 있다. (…) 인터뷰하기 사흘 전에 두 다리를 잃은, 앞니가 하나 빠진 스물두 살의 과테말라 청년은 이렇게 말한다. “기차에 타기 전에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해줬죠. 기차에서 떨어져 팔이나 다리가 기차 아래로 빨려 들어가거든 머리도 그 안에 넣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찰나의 기회가 있다고요. 난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 매해 50만 명이 이 여행에서 살아남아. 우리도 이 여행에서 익명으로 남을 수 있어. 리디아는 속으로 생각한다. (…) 하비에르에 대한 피가 얼어붙을 듯한 두려움, 초록색 타일이 깔린 샤워실에서의 기억, 세바스티안이 굽던 닭 다리를 먹으며 죽은 가족들 사이를 걸어 다니던 시카리오에 비하면 라 베스티아에 대한 두려움과 거기서 폭력, 유괴, 죽음이 만연하다는 사실은 약과다. (162~164쪽) 카르텔의 살육을 피해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나게 된 리디아는 라 베스티아 지붕에 올라야 하는 난민이 되기 전에는 그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어려움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사연에 잠시 마음 아파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저녁 식사에 쓸 마늘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곤 했다. 커민스는 이렇게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쉽게 간과했던 난민의 처절한 삶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한 번쯤 돌아보도록 만든다. 《아메리칸 더트》는 경제 대공황 당시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긴 채 캘리포니아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조드 일가의 삶을 다룬,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의 대표작 《분노의 포도》에 비견되기도 한다. 계약 당시부터 출판사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은 《아메리칸 더트》는 출간 직후 “21세기판 《분노의 포도》”라는 찬사를 받으며 수많은 매체가 동시에 ‘원픽’ 소설로 꼽기도 했다. 이런 찬사에 걸맞게 숨 돌릴 틈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로 독자들을 매료시키면서 동시에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 난민 문제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본문중에서

맨 처음에 발사된 총알 중 하나가 루카가 소변을 보려는 변기 위의 열린 창문으로 날아든다. 루카는 그것이 총알인 줄도 모른다. 미간에 총알이 박히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운이 좋아서다. 자신을 지나친 총알이 뒤쪽 타일 벽에 부드럽게 박히는 소리도 듣지 못한다. 하지만 그 후에 이어진 총알 세례는 귀청이 떨어질 듯 요란해서 헬리콥터 날개가 돌아가는 듯한 두두두, 탕탕, 딸칵딸칵 소리가 울려퍼진다. 비명도 쏟아지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총격으로 전멸된다. 루카가 바지 지퍼를 올리고 변기 뚜껑을 내린 다음 그 위에 올라가 창밖을 내다보기도 전에, 저 끔찍한 아우성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욕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엄마가 나타난다. “미호, 이리 와.” 엄마가 어찌나 나직이 속삭이는지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한다. 엄마는 거친 손길로 루카를 샤워실 쪽으로 몬다. 루카는 샤워실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이 걸려 앞으로 넘어지고 손으로 바닥을 짚는다. 엄마도 덩달아 넘어지면서 루카를 덮치는 바람에 루카의 아랫입술이 이에 찔려 찢어진다. 루카의 입에서 피 맛이 난다. 샤워실 바닥에 깔린 연초록색 타일 위로 핏방울이 붉고 작은 원을 그린다. 엄마는 루카를 샤워실 구석으로 밀친다. 이 샤워실에는 문이나 커튼이 없다. 그저 욕실 한쪽 귀퉁이에 타일 벽을 칸막이처럼 하나 더 세웠을 뿐이다. 높이가 168센티미터, 폭이 90센티미터쯤 돼서 둘을 가려줄 수 있다. 운이 따른다면. (핏빛 토요일, 11~12쪽) 마침내 엄마가 카드키로 객실 문을 열고 카펫이 깔린 복도를 좌우로 바라보며 루카를 얼른 객실 안으로 밀어 넣는다. 엄마가 문을 잠그고 체인까지 걸고 타일이 깔린 바닥을 가로질러 책상 의자를 끌고 와 손잡이 밑에 찔러넣고 나자 루카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루카가 꾹꾹 눌러온 고통은 폭우가 되어 쏟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참고 있는 숨처럼 가슴에 갇힌 채 그대로 남아 루카의 마음 주변을 맴돈다. (…) 리디아는 방을 가로질러 발코니로 이어지는 문을 옆으로 민다. 신선한 공기를 아무리 들이마셔도 머릿속이 맑아지지 않을 듯하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 문을 열어둔 채 발코니로 나간다. 공포에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슬픔보다 즉각적이라는 사실이다. 리디아는 이제야 그걸 깨닫는다. 곧 오늘 있었던 일을 대면해야 할 테지만 지금으로서는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이 마취제가 되어 지독한 고통을 느낄 수 없다. 그녀는 발코니 너머를 바라본 다음 아래쪽 길을 살핀다. 밖에는 아무도 없다고, 우리는 안전하다고 자신을 달랜다. 아래층 로비에서는 데스크 업무를 보던 남자 직원이 잠시 실례한다고 말하고는 직원 휴게실로 간다. 화장실 둘째 칸에 들어가 양복 재킷 안쪽에서 대포폰을 꺼내더니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낸다. 특별 손님 둘이 방금 두케사 임페리알 호텔에 체크인했음. (알콘, 46~47쪽) 하비에르는 거기 서서 리디아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고 마침내 그녀는 커피를 권했다. 그는 사양하지 않았다. 리디아는 그가 편안히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계산대 반대편에 스툴 하나를 놓아주었다. 하비에르는 콧수염에 거품이 묻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들은 문학과 시, 경제, 정치, 둘 다 열렬히 좋아하는 음악에 관해 이야기했고 하비에르는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머물렀다. 급기야 리디아는 그가 어디선가 실종된 줄 알고 가족들이 걱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비에르는 그럴 리 없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바깥세상에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건 리디아가 늘 꿈꿔왔던 책방 주인의 삶이었다. 책방 운영과 관련된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을 하는 틈틈이 그들을 둘러싼 책만큼이나 활기차고 매력적인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당신 같은 손님이 세 명만 더 있다면 전 더 바랄 게 없겠어요.” 남은 커피를 다 마시며 리디아가 말했다. 하비에르는 가슴에 손을 얹고 살짝 허리를 숙였다. “저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도록 노력해보죠.”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부드럽게 말했다. “다른 상황에서 만났다면 당신에게 청혼했을 겁니다.” 리디아는 스툴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저었다. “미안합니다. 당신을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하비에르가 말했다. 리디아는 말없이 커피 잔 두 개를 치웠다. 그녀가 배신감을 느낀 이유는 그의 고백 때문이 아니라 미처 말하지 못한 자신의 대답 때문이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그녀 역시 그 청혼을 승낙했을 거 라는 대답. (첫 만남, 53~54쪽) 대기 중인 강철을 두드리며 달려오는 기차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루카는 본능적으로 손을 떼고 다시 엄마 옆으로 간다. 공터에 있던 난민들이 갑자기 부산하게 움직이며 기차에 올라탈 준비를 한다. 다들 소지품을 챙기더니 흩어져서 선로로 다가간다. 각자 자기 자리를 정하고 간격을 벌리며 서로 상대에게 기차를 따라 뛸 공간을 준다. 또한 기차가 도착할 때 급습하는 이민국 요원이 없는지도 살핀다. 갑자기 더 많은 사람이 이틀 동안 숨어 있던 은신처에서 나와 위험천만한 질주를 시작한다. (…) “기차에 타고 싶니, 미호?” 리디아는 루카에게 묻는다. 루카가 싫다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엄마,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죽고 싶지 않아. 무서워”라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루카는 그저 엄마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도 해보면 어떨까. 이번에는 보기만 할 거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자.” 리디아는 두려워서 속이 울렁거린다. (…) 이제부터는 사소한 것까지 경쟁하는 시합이다. 모든 것이 똑같이 중요하다. 리디아는 요령을 배우기 위해 그들을 바라보며 완전히 빠져든다. 반드시 기차의 속도에 맞춰서 달려야 한다. 그러다가 올라타기에 적합한 지점을 찾아야 한다. 튀어나왔거나, 사다리가 있거나, 손으로 움켜잡을 곳이 많으면서 얼른 화물칸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지점. 일단 어디를 잡을지 선택하고 나면 그 자리를 사수해야 한다. 나 못지않게 다급한 다른 난민들에게 자리를 빼앗기면 안 된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노선을 바꾸면 안 된다. 하지만 앞길을 막을지 모를 나뭇가지나 고정된 장애물을 주의해야 한다. 동시에 땅에도 면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달리면서 구멍에 빠지거나 돌부리에 걸려서 무엇이든 갈아버리는 짐승의 바퀴 밑에 깔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칙칙폭폭, 덜컹덜컹, 달각달각, 우르릉거리는 바퀴의 힘을 절대, 절대 잊으면 안 된다. 그 사실을 일깨워주듯이 바퀴가 비명을 지른다. (바퀴 달린 짐승, 181~183쪽) 쿨리아칸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외곽에 이르러 단조로움을 깨는 비명이 들리자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사이렌처럼 같은 단어를 반복한다. “이민국이다, 이민국!” 주위에서 난민들이 서둘러 소지품을 집어 든다. 아예 집어들 생각조차 안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다가오는 트럭이 일으키는 흙먼지를 바라보고는 반대편으로 뛰어내린다. “솔레다드, 얼른 일어나. 우리 가야 해.” 레베카가 겁에 질려 긴장한 목소리로 말한다. 기차는 속도를 늦추지만 멈추지 않는다. 지붕 위의 사람들은 기다리지 않고 뛰어내린 다음 흩어져 쏜살같이 달린다. “젠장!” 솔레다드는 욕하며 배낭을 어깨에 멘다. “무슨 일이야, 엄마?” 루카가 묻는다. 원칙적으로 리디아와 루카에게는 이민국이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멕시코인이기에 과테말라나 엘살바도르로 추방되지 않는다. 대다수 난민과 달리 그들은 멕시코에 머무는 게 불법이 아니다. 그저 기차에 올라타면 안 된다는 사소한 규정을 어겼을 뿐이다. 따라서 그냥 주위 사람들이 겁에 질려서 덩달아 겁에 질렸을 수 있다. 공포에 전염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리디아는 안다. 제복을 입은 이민국 요원들은 법과 질서를 집행하려고 여기 오는 게 아니다. 리디아는 오로지 본능에서 비롯된 뼛속 깊은 공포를 통해 시민권이 자신을 보호해줄 수 없다고 확신한다. 그들이 중대한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느낄 수 있다. (계획, 352~353쪽)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지?” 사령관이 묻는다. 리디아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른다. “폭력과 납치, 금품 갈취, 강간”이라고 대답하고 싶지는 않다. “사악하고 악랄한 소행”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여기서 빨리 나가지 않으면 내가 죽겠죠”라고 대답하고 싶지도 않다. 적당한 대답이 없다. “가끔은 불행한 결과가 있기도 하지.” 사령관은 사무실 밖의 죽은 남자가 있는 쪽을 향해 막연히 손을 흔들더니 루카에게 미소 짓는다. 루카의 얼굴은 완전히 무표정하다. “하지만 이 결과를 기억하게 될 거야. 그 기억 때문에 침묵을 지킬 거고. 따라서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는 거지.” (…) “누나들을 두고 갈 순 없어.” 루카가 말한다. (…) 리디아는 경외심에 차서 아들을 바라본다. 대체 뭐 하자는 거지? “루카…….” (…) 사령관은 거친 숨을 내쉬며 펜 끝으로 노트를 가볍게 톡톡 친다. “저 자매는 내다 팔 거다. 저 정도 미모면…….” 사령관은 휘파람을 불더니 다시 루카를 바라본다. “하지만 네 용감하고 의리 있는 행동을 보상해주고 싶구나. 아주 인상적이어서 말이지.” 그러고는 허리를 곧게 펴고 다시 리디아에게 말한다. “돈 있지?” (…) 사령관이 언성을 높인다. “라파, 여자애들을 데려와.” 그러고는 리디아에게 말한다. “75,000페소.” 리디아는 숨을 헉 들이쉰다. “한 사람당.” 그녀에게 남은 돈 거의 전부다. 사령관은 그녀와 루카의 몸값으로 빼앗아간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있다. 리디아는 그 금액이 이미 정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름이 끼친다. 저들이 인간을 돈으로 환산한 가치가 그 금액이다. 만약 리디아가 그 돈을 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저 자매를 살 것이다. 또한 만약 저 보초가 그녀의 얼굴이 낯익은 이유를 기억해낸다면 그녀의 몸값도 치솟을 것이다. 그 가능성을 기억해내자 이 방에 재깍거리는 폭탄이 있는 듯하다. 루카가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리디아는 아들을 위해 망설이지 않는다. “돈 낼게요.” (몸값, 383~388쪽) 리디아는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출신의 난민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지대까지 걸어가 망명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궁핍한 환경에서 도망쳤다. 리디아는 부엌에서 저녁 요리를 하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들의 사연을 들었다. 엄마들은 유모차를 밀며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어린아이들은 바닥에 구멍이 뚫린 분홍색 크록스를 신고 걷는다. (…) 리디아는 그들의 사연을 들으며 부엌에서 양파와 고수를 다졌다. 그들은 폭력과 가난, 정부보다 더 강력한 갱단에서 도망쳤다. 리디아는 그들의 두려움과 결의, 체념을 들었다. 그들은 미국에 가거나 아니면 가는 도중에 길에서 죽기를 원했다. 고향에 있어 봐야 살아남을 확률은 더 희박해지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 북쪽으로 걸어가는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불러주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오자 리디아는 갑자기 감정이 복받쳤다. (…) 리디아가 느낀 감정은 복잡했는데 불의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고 걱정, 연민, 무력감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사소한 감정이었다. 마늘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집안일에 대한 짜증으로 금세 지워져 버렸다. 저녁에는 밋밋한 음식을 먹게 될 터였다. (노갈레스, 448~449쪽) 뒤에서 비명이 들리자 그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숙인다. 하지만 엘 차칼은 그대로 서서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본다. 사람들의 머리 위를 지나 뒤에서부터 잿빛 계곡을 가르며 악몽처럼 빠르게 다가오는 검은 물줄기가 보인다. 물줄기는 그들 뒤에 있는 바위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일어나요! 어서!” 엘 차칼이 소리친다. 그의 목소리는 협곡 절벽에 부딪혀 울린다. 이번만큼은 조용히 해야 한다는 규칙을 어기고 다시 소리를 지른다. “일어나요! 빨리!” 엘 차칼은 바위에서 바위로 뛰어간 다음 허리보다 약간 높은 곳에 넓적하게 튀어나온 바위를 향해 손을 뻗어 그 위로 몸을 끌어올린다. (…) 줄 앞쪽에 있던 이들은 다시 움직여서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고, 더 높은 곳에 튀어나온 바위를 발견해 다시 그 위로 올라가 절벽을 타고 오른다. 이제 그들은 협곡 바닥에서 거의 벗어났다. 여기서 보니 아주 확실해진다. 쏜살같이 흐르는 물, 다른 길, 튀어나온 바위로만 이뤄진 더 높은 길을 발견하고 거기 올라가서 보니 저 협곡 바닥이 예전에는 강바닥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느님 맙소사. (…) 리카르딘의 몸은 어색하게 비틀어졌지만 이제는 붙잡을 데가 있고 그들이 그를 잡고 있다. 리카르딘은 익사하지 않을 것이다. 젖은 몸에서 떨어지는 물이 밑에 있는 땅을 더 짙은 색으로 물들이고, 손가락은 땅을 더듬거리지만 하반신은 아직 물에 잠겨서 움직일 수 없다. 리카르딘이 안도하지 않는 이유는 알기 때문이다. “다리가 부러졌어요. 부러진 게 확실해요. 다리가 부러졌어요.” 리카르딘은 울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이 하류까지 따라오지 않은 게 다행이다. 물속 틈에서 다리를 빼내는 끔찍한 일을 직접 보고 비명을 듣는 일은 누구도 원치 않을 테니까. (낙오, 556~560쪽) 그의 얼굴보다 목소리가 먼저 들린다. “말해.” 그가 말한다.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고대하며. “뭘 말해요? 내가 죽었다고? 우리 아들이 죽었다고?” “맙소사, 리디아.”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리디아. 예전에 그의 입에서 나왔을 때와 똑같다. 리디아. “실망시켜서 미안하지만, 우린 살아 있어요.” “리디아.” 그가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리디아는 너무 혼란스럽다. 그를 향한 증오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 그를 어찌나 증오하는지 2,617킬로미터나 떨어졌는데도 단지 그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만으로도 그를 죽일 수 있다. 그런데도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리디아.” (…) “내가 어떻게 당신을 해칠 수 있겠어, 리디아.” 리디아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리고 숨을 헉 들이쉰다. “어떻게 날 해칠 수가 있냐고? 해쳐? 당신은 날 해쳤어요, 세뇨르. 날 고문했어요. 내 세상을 전부 다 파괴했다고요.” “아냐, 리디아. 난 결코 그런 뜻으로…….” “입 닥쳐!” 리디아가 그의 말을 자르고 소리를 지른다. “당신 뜻이 뭐든 난 관심 없어. 당신이 자신의 괴물 같은 면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도 관심 없고. 난 그저 이 모든 게 끝났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한 거야. 알겠어? 다 끝났다고.” 전화기 반대편에서 하비에르가 우아하게 한숨을 쉰다.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때 그녀가 사랑했던 그의 익숙한 버릇이다. 그 한숨 소리를 듣자 정신이 아찔하다. (…) “난 살아남을 거야. 왜냐하면 내겐 아직 루카가 있으니까. 내겐 루카가 있어.” (엘 엘, 583~586쪽)

  목차

01 핏빛 토요일 02 사라져야 해 03 알콘 04 첫 만남 05 영혼의 여왕에게 06 탈출 07 칠판싱고 08 라 레추사 09 침묵 10 피할 수 없는 선택 11 바퀴 달린 짐승 12 카사 델 미그란테 13 소문 14 뛰어내리다 15 동행 16 두 자매 17 로렌소 18 마르타 19 엘메르 20 계획 21 먹잇감 22 몸값 23 다시, 시작 24 조금만 더 25 베토 26 노갈레스 27 코요테 28 그의 흔적 29 솔레다드 30 국경을 넘다 31 사막 횡단 32 폭우 33 낙오 34 동굴 35 엘 엘 36 19번 도로 에필로그 작가의 말

  저자 및 역자 소개

제닌 커민스 저/노진선 역 : 제닌 커민스 저
미 해군이던 아버지가 스페인에 주둔하던 때 태어나 메릴랜드, 벨파스트, 뉴욕에서 살았다. 작가가 되기 전에 10년 동안 출판계에서 일하기도 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주자의 손녀이자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의 아내이기도 한 그는 《아메리칸 더트》를 통해 중남미 난민을 둘러싼 선입견 뒤에 존재하는, 간과되어온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삶을 작품을 통해 잘 보여준다. 지은 책으로 잔혹한 범죄를 겪은 후 극복 과정을 담은 자서전 《찢어진 하늘》과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 《아웃사이드 보이》, 《구부러진 가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