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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 다섯 여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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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 :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 다섯 여자 이야기
467 p. : 삽화 ; 22 cm
본서는 "The five : the untold lives of the women killed by Jack the Ripper. c2019."의 번역서임
수상: 영국 최고 권위의 베일리 기퍼드상, 2019
수상: 굿리즈초이스 어워드 역사 부문 수상작
참고문헌(p. 436-452)과 색인수록
[인명] Jack,
Murder victims   -   England   -   London
Working class women   -   England   -   London   -   Social conditions   -   19th century
Whitechapel (London, England)   -   History   -   19th century


  소장사항 : 을지대학교 학술정보원[의정부] [ 362.88 R895f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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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들을 추모하는 책이다. 나머지를 꾸짖는 책이다. 이 책이 쓰이기까지 130년이 걸린 이유가 무엇이었느냐고.” _《가디언》 인류 역사상 ‘잭 더 리퍼’만큼 유명해진 범죄자는 없다. 사건이 발생한 지 13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이름을 포함해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 이 실체 없는 살인자는, 그래서 오히려 점점 더 유명해지기만 했다. 그의 ‘애칭’은 연쇄살인범의 대표명사처럼 쓰이고, 그의 살인은 소설, 영화, 음악, 음악극, 드라마, 만화, 미술, 게임 등 수많은 작품의 소재로 사랑받았으며, 현재까지도 화이트채플의 살인 현장을 기념하며 돌아보는 ‘잭 더 리퍼 투어’ 상품이 에어비앤비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다. 불행히도 이것은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888년 런던, 그땐 낭만이 있었다”라는 홍보 문구를 내건 라이선스 뮤지컬 〈잭 더 리퍼〉가 2022년 초 한국에서 초호화 캐스팅으로 다시 한번 절찬리 상연 중이다. 어느덧 끔찍한 사건 자체는 무뎌지고 우리는 그의 존재를 인간성의 어둠과 컬트의 상징 정도로 느끼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130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살인자가 아닌 희생자에게 초점을 맞춘 책이 처음 출간되었다. 메리 앤 ‘폴리’ 니컬스, 애니 채프먼, 엘리자베스 스트라이드, 캐서린(케이트) 에도스, 메리 제인 켈리. 이른바 잭 더 리퍼의 “대표 희생자 5인(the canonical five)”으로 불리는 다섯 사람에 관해 알려진 것은 이들이 전부 ‘매춘부’였으며 시신이 잔혹하게 훼손되어 살해당했다는 사실뿐이다. 저자는 희생자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기’ 위해 철저한 자료 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집요하게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이 놀라운 대추적극에서 발견되는 진실은 살인마의 정체가 아니며, 예상대로 희생자들이 모두 성매매 여성이었다/아니었다는 단정도 아니다. 저자는 지금까지 대부분 미디어와 대중이 일삼아 왔던 것처럼 살인자의 정체를 부풀리거나 그에게 열광하는 대신, 최선의 근거와 합리적인 추정에 기대 희생자들의 삶을 복원하며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과 똑같이 누군가의 자식으로, 형제로 태어나 누군가의 친구로, 연인으로, 배우자로, 한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던 이 여자들이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거리에서 홀로 처참한 최후를 맞아야만 했는지 아느냐고. 그 배후에 있었던 것은 ‘미치광이 영웅 살인마’ 한 명이 아니라 당시 빈민의 처참한 생활상과 가부장제의 사회구조, 그리고 세기를 넘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여성혐오의 문화, 그 모든 것이라고. 화려한 빅토리아 시대 이면에 도사린 빈민들의 생활상과 그 응축된 결과물, 잭 더 리퍼의 등장 단행본만 해도 200여 권에 달하는 이 책의 참고 문헌 수가 말해 주듯이, 이 희대의 살인 사건과 시대 배경에 관한 자료는 사실 매우 풍부한 편이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대영제국이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렸던 전성기로 회자되는 만큼 끊임없이 미화되어 온 반면, 한편으로는 마치 시대와 뚝 떨어져 지옥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잭 더 리퍼’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졌다. 즉, 양쪽 다 너무도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빅토리아 시대와 잭 더 리퍼는 거의 연결되지 않았다. 빅토리아 왕의 주치의가 잭 더 리퍼였다는 둥의 괴담이나 돌았을 뿐이다. 이는 사건이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개인적 비극으로 축소되고, 나아가 아예 피해자의 현실을 지우며 가해자를 부각하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낀 저자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사회사 취재와 기술을 통해 놀랍도록 효과적으로 이 단절을 바로잡는다. 저자에 따르면 이 살인 사건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이스트엔드의 빈민들이 살아가던, 입에 담을 수 없이 끔찍한 환경”이었다. 살인과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트래펄가 광장의 점거와 폭동은 이들을 비롯한 런던의 빈곤층이 만성적으로 앓아 온 질병을 나타내는 너무도 눈에 띄는 한 징후”이자 “기성 체제의 얼굴에 튄 기침”이었으며, “잭 더 리퍼의 등장은 그보다 한층 더 요란하고 난폭한 기침”이었다는 것이다. 기성사회가 자신의 깨끗한 얼굴에 튄 이 더러운 오물을 자신과 관계없는 것인 양 철저히 분리하려 했던 이면에는, 극심한 사회 양극화뿐 아니라 거대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 문화가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희생자들의 인생 궤적과 더불어 빅토리아 시대 빈민과 여성의 생활상을 솜털 하나까지 정교하게 재현해 낸다. 유려하면서도 낭만화가 끼어들 수 없는 빈틈없는 묘사와 신랄한 분석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철저한 자료 수집과 조사 및 검증 덕이다. 저자는 남아 있는 부검 보고서와 증인들에 대한 사인 심문 내용, 공식 기록이 부실한 가운데 그나마 많은 정보를 남겼지만 동시에 공포를 조장하고 온갖 왜곡과 잘못된 관점을 퍼뜨린 언론 기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했고, 당시 사회상을 다각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메리 힉스, 프랜시스 플레이스, 헨리 메이휴, 찰스 부스, 제임스 브라이스 등 여러 사회 연구자 및 개혁가의 저작 또한 적극적으로 참고했다. 이렇듯 방대한 자료의 숲을 낱낱이 파헤쳐 그는 마침내 희생자들의 삶과 존엄을 되살려 냈다. 그렇게 죽어도 좋은 ‘그저 매춘부’는 없다 130여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더 파이브’, 즉 다섯 희생자를 묶어 온 호칭은 이론의 여지 없이 ‘그저 매춘부’였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 당시 런던경찰청의 식별 기준에 따른다고 해도, 다섯 사람 중 셋은 성매매에 잠시라도 종사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각 사인 심문 검시관의 결론에 따르면, 희생자 메리 앤 ‘폴리’ 니컬스는 “인쇄 기계공 윌리엄 니컬스의 아내”, 애니 채프먼은 “마부 존 채프먼의 과부”, 엘리자베스 스트라이드는 “목수 존 토머스 스트라이드의 과부”, 캐서린(케이트) 에도스는 “추정상 독신 여성”이었고, 공개적으로 성매매에 종사했던 메리 제인 켈리 단 한 명만이 “매춘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저자가 여기서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말하려 하는 바는 이 희생자들이 ‘성매매와 아무 관련도 없는 정숙한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저자는 19세기에도 지금도, “피해자들이 ‘그저 매춘부’라는 주장은 ‘세상에는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가 있다’는 믿음, 즉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을 영속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섯 여자의 삶은 성매매 여부를 떠나 가부장제의 사회규범에 들어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되었으며 당연한 희생, 즉 ‘그렇게 끝나도 싼’ 인생이 되었다. 그런 인생들이니만큼 서로 가까운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며 살다가 같은 살인자에게 죽임을 당했겠거니 추측하기 쉽지만,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다섯을 하나로 묶었던 건 한 명의 살인자, 그리고 유구한 빈곤과 가부장제의 역사일 뿐 그들의 삶은 하나하나 오롯한 이야기와 가치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당시 시대상을 사실에 가깝게 구현하면서 거기에 피해자 각각의 출생과 결혼과 죽음에 관한 기록, 교회 기록, 법정 기록, 납세 기록, 런던 각 교구 구빈원들의 기록 등을 촘촘히 교차시켰다. 그렇게 되살려 낸 다섯 여자의 삶은 훌륭한 문학작품을 읽는 것 이상의 감동을 주며, 그들이 19세기 영국을 떠나 21세기 대한민국 어딘가에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느끼게 한다. 닻 없이 표류한 여자들의 마지막 밤 첫 번째 희생자 폴리는 당시 영국 인쇄업의 중심지였던 플리트가, 일명 ‘잉크 거리’에서 활자를 주조하는 대장장이의 딸로 태어났다. 그 시대 노동자계급 여성이 보통 글을 배우지 못했던 것에 비해, 폴리는 주변 환경과 아버지의 교육관 덕에 읽기와 쓰기를 모두 익혔다. 좁은 방 한 칸에서 모든 식구가 함께 살아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며 폴리가 누린 유일한 혜택이었다. 결국 그 환경으로 인해 폴리는 어머니와 동생을 결핵으로 잃고 이른 나이에 가정의 안주인 역할까지 해야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피바디라는 외국인 자선사업가가 지은 최신식 연립주택에 입주하는 ‘행운’을 누리지만,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반강제로 집을 등지고 구빈원과 싸구려 여인숙, 혹은 노숙을 전전하게 된다. 남편이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부양비마저 끊어 버리기 위해 도리어 폴리의 남자관계를 지어내 고발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폴리가 살해당했을 때, 검시관은 폴리의 주변인들에게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을 가진 심문을 한다. “당신은 고인의 습관이 아주 ‘깨끗’했다고 생각합니까? 행실이 ‘방탕’하지는 않았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답하는 아버지와 친구의 증언을, 언론은 자기들 입맛대로 마음껏 가공해 찍어 냈다. “잉크 거리에서 태어난 폴리는 기사와 삽화, 소문과 추문에 실려 잉크 거리로 돌아갔다.” 두 번째 희생자 애니 채프먼은 군인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애니는 당시 지위가 꽤 높았던 개인 마부와 결혼해 고용주 저택의 근사한 영지에서 살림을 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꿈꾸던 중산층의 삶으로 진입하기 바로 직전 애니는 ‘알코올중독’에 발목이 잡혔다. 그러자 주어진 선택지는 역시 스스로 집을 떠나 구빈원과 거리로 향하는 것뿐이었다. 병든 몸으로 코바늘뜨기, 성냥팔이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던 애니는 여인숙에 하루 묵을 돈조차 다 떨어진 보통의 날들 중 어느 날 거리에서 잠들게 된다. “그날 밤 살인자가 가져간 것은 악마의 음료가 다 쓸어 가고 남은 애니의 껍데기뿐이었다.” 세 번째 희생자 엘리자베스 스트라이드는 스웨덴의 토르슬란다라는 시골 마을에서 독실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엘리자베스는 열일곱 살에 예테보리라는 항구도시로 나가 당시 관례대로 어느 집의 입주 가정부로 일했으나 누군지 밝혀지지 않은 남성과의 관계로 매독에 걸렸고, 결국 성매매의 길로 내몰렸다. 죽을 고비와 국가의 치욕적인 관리를 견뎌내고 영국으로 건너가 결혼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끝난 뒤에는, 수백 명이 사망한 프린세스앨리스호 참사의 피해자로 거짓행세하기도 하고, 전혀 모르는 여성의 잃어버린 동생을 자임하기도 하며 살아갔다. 화이트채플에 사는 내내 누구와도 깊이 사귀지 않고 곁을 내주지 않으며 “모두이자 아무도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던 엘리자베스는 그런 채로 생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네 번째 희생자는 엘리자베스와 같은 날 밤에 사망한 케이트 에도스다. 부모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언니들은 가장 교육을 많이 받았고 유달리 영민했던 케이트를 홀로 울버햄프턴의 친척집으로 보냈다. 단조롭고 고된 공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케이트는 토머스 콘웨이라는 아일랜드 ‘한량’을 만나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정식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싸구려 책을 팔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행상으로 살았다. 읽고 쓸 줄 아는 케이트는 글을 모르는 토머스 대신 발라드시를 직접 짓기도 했다. 케이트는 구빈원에서 아이를 낳고 길에서 키우는 등 모진 고생을 하며 토머스에게 상습적인 폭력을 당하면서도, 당시 속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행상의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살해당하던 그날 밤도 익숙하게 거리에서 잠든 케이트는, “닻 없이 표류하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당장이라도 누군가 나타나 그를 그 자리에서 치우리란 걸 알고 있었다”. 다섯 번째 희생자는 ‘메리 제인 켈리’라고 알려진 인물이지만 실제 이름이 맞는지 가족은 있는지 등 삶의 행적이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메리 제인의 삶은 당시 여성이 얼마나 쉽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발명’할 수 있었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스스로 여러 사람에게 흘린 말들의 조각조각을 종합해 봤을 때, 메리 제인은 아일랜드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받았다. 하지만 남편이 죽은 뒤 카디프로 갔다가 성매매를 시작하게 됐고, 1884년쯤에는 웨스트런던의 성매매 집결지로 흘러들었다. 또다시 운명의 굴곡을 따라 정반대편 이스트엔드의 화이트채플까지 다다른 메리 제인은, 이 살인 사건의 최후이자 최연소 희생자가 된다. 메리 제인은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성매매를 했던 여성이었기 때문에, 죽은 후 그만큼 더 성적인 존재로 재창작되었다. 실제 메리 제인은 생전에 잭 더 리퍼라는 미지의 살인마에 두려워 떨면서도 자기와 비슷한 처지인 여성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자신의 일을 즐기는 듯 보이기도 했지만 이웃의 스무 살 여성에게는 자기 삶에 진심으로 신물이 난다고 말하며 “‘이 일’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타일렀다. 이렇듯 이들이 한 살인마의 타깃이 된 것은 똑같은 기질을 가지고 ‘매춘부’로 살아갔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로 인해 ‘타락한 여자’가 되어 저마다 벼랑 끝에 내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버려지고 맞고 병들고 지친 채로, 길 혹은 길과 다름없는 거처에서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숱한 나날들 가운데 어느 밤에 그들을 누가 거리에서 치우든 죽이든 아무도 목격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잭 더 리퍼라는 비겁한 살인마가 바로 그들을 고른 것이다. 당시 사회와 언론이 이런 사실을 고의적으로 누락하고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에게 ‘그저 매춘부’라는 딱지를 붙인 덕택에, 100년도 더 지난 오늘날까지 그들에 관해 글을 쓰거나 ‘잭 더 리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여전히 “피해자를 비방하고, 성애화하고, 비인간화할 수” 있음을 저자는 보여 준다.

  본문중에서

내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살인범을 잡아 그 이름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나는 다섯 사람의 발자국을 다시 추적하고, 그들의 경험을 그 시대의 맥락 안에서 살펴보고, 빛과 어둠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행적을 따라가려고 했다. 그동안 우리는 그들의 껍데기만을 보아 왔으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엄마를 찾아 울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사랑에 빠진 아가씨들이었다. 그들은 출산의 고통과 부모의 죽음을 겪었다. 그들은 웃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들은 형제자매와 다투었다. 그들은 울었고 꿈꾸었고 상처 받았고 작은 승리에 기뻐했다. 그들의 삶은 빅토리아 시대의 다른 수많은 여성과 비슷했지만, 죽음은 너무도 이례적이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이제라도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분명히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또한 그들이 목숨과 함께 그토록 잔인하게 빼앗겼던 것을 그들에게 돌려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이 빼앗긴 것은 존엄성이었다. 본문 34쪽(들어가며: 두 도시 이야기) 사람들은 폴리 나이의 여자가 남편이나 가족 없이 살아감으로써 야기하는 ‘혼돈’에서 단 하나의 결론을 끌어냈다. 이 사람은 결함이 있다고, 이 사람은 실패자라고, 또 여자의 인격을 문제 삼을 때 늘 하는 말처럼 이 사람은 성적으로 부도덕하다고 말이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설령 세탁부나 청소부로 일하며 혼자 살아갈 능력이 있더라도, 아니 어느 계급 에 속하든 상관없이, 여자가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할 나이에 독신으로 사는 것은 그야말로 이단 행위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남편 없는 여자를 조금도 신뢰하지 않았다. 그런 여자는 어떠한 보호책도 없이 다른 남자들의 책략이나 폭력에 노출되는 것이 당연했고, 그런 여자의 삶에 의미는 없었다. 한편 아내 없는 남자에겐 현실적 필요와 성적 욕구를 채워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폴리와 윌리엄 모두 하루빨리 새로운 상대를 찾으려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남편은 해도 되었던 일들이 아내에겐 불법이었다. 본문 74~75쪽(1장 _ 폴리) 폴리 니컬스가 살해당하기 약 1년 전인 1887년 7월 19일 런던경찰청장 찰스 워런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공포했다. “여성이 스스로를 상습 매춘부라고 칭하거나 해당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적이 없는 한, 경찰은 그 어떤 여성도 상습 매춘부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또한 경관은 “본인 생각으로는 완벽하게 확실하더라도” 그 사실을 입증할 증인과 증거가 없는 한 “그 어떤 특정 여성도 상습 매춘부로 단정해서는 안” 되었다. 폴리 니컬스의 경우에도, 애니 채프먼의 경우에도 그들이 성매매를 했다거나 스스로를 매춘부라고 칭했다고 말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잭 더 리퍼 피해자의 공상화된 이미지들에서는 애니가 가슴이 드러나는 웃옷을 입고 뺨을 붉게 화장한 채 가스등 아래에서 유혹적인 눈빛을 던지며 “길거리 호객”을 한 것으로 그려졌지만, 이는 거짓이다. 애니는 매음굴에 들어간 적도, 포주를 위해 일한 적도 없다. 성매매를 하다 체포당했다거나 최소한 경고라도 받았다는 증거 또한 전혀 없다. 본문 176~177쪽(2장 _ 애니) 사회개혁가 토머스 바너도는 자신이 9월 26일 이 여인숙의 공동 주방에서 만난 여러 여자 중에 엘리자베스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아동복지 운동가인 바너도는 자녀와 함께 여인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상황을 개선할 방법을 도모하고자 그곳을 찾아갔다. 그러나 여자 숙박인들의 관심은 화이트채플 살인 사건에 쏠려 있었다. 그들은 연속 살인 사건에 “너무나 겁먹은 상태였다”. 그중 “술을 마신 게 분명한 어떤 불쌍한 사람이 다소 격렬하게 말했다. ‘우린 다 망했고 우리가 어떻게 되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다음번엔 우리 중 누군가가 살해당할 거야! 누구 한 명이라도 우리 같은 사람을 진작에 도와줬더라면 우린 절대 이 꼴이 되지 않았을 거라고”! 나중에 바너도는 그 말을 한 사람이 엘리자베스 스트라이드였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곳의 모든 여자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이드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그 모든 여자가 되려고 했다. 모두이자 아무도 아닌 사람이. 본문 247~248쪽(3장 _ 엘리자베스) 케이트는 마이터스퀘어 저 안쪽에 불빛이 닿지 않는 적당한 귀퉁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거기에 자리를 잡고 의자에 앉듯이 벽에 등을 기대었다. 아마 그때 주머니에 든 이런저런 물건이 서로 부딪는 소리가 났을 것이다. 그 안엔 설탕과 차, 전당표를 담아 둔 양철 상자가 여러 개 있었다. 가족과의 추억이 깃든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괴로운 과거를 잊고 주변의 모든 사람을 내칠 생각만 하는 것 같던 그에게 그 작은 물건들이 뭐라고 속삭였을까? 비웃었을까? 문득문득 맡아지는 양철 냄새가 울버햄프턴이나 올드홀워크스를, 혹은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진 않았을까? 케이트는 원체 유쾌한 사람, 노래하며 즐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상처투성이였을 게 틀림없다. 그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자신에게 허락된 휴식을 취했다. 닻 없이 표류하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는 당장이라도 누군가 나타나 그를 그 자리에서 치우리란 걸 알고 있었다. 본문 340쪽(4장 _ 케이트) 두 사람은 사이가 계속 틀어졌고 결국 메리 제인은 바넷에게 그와의 관계보다도 ‘즐거운 여자들’과의 우정이 더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아주 분명하게 전했다. 그해 10월, 화이트채플의 모든 사람이 잭 더 리퍼 살인 사건을 이야기하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취약한 여자들이 많이 사는 도싯가와 밀러스코트의 주민들은 특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바넷에 따르면 그와 메리 제인은 살인범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실렸나 싶어 매일 신문을 읽었다. 그러나 살인범은 아직 바깥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에 메리 제인은 성매매나 노숙밖에 선택지가 없는 지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기로 했다. 맨 처음 초대한 손님은 ‘줄리아’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진 성매매 여성이었다. 그 직후에는 세탁부로 일하는 마리아 하비라는 독신 여성이 잘 돈이 없어 신세를 졌다가 방에 옷을 한 무더기 두고 갔다. 결국 조지프 바넷은 이 ‘밤손님들’ 앞에서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다. 본문 382쪽(5장 _ 메리 제인) 누구도 알 수 없고 잡을 수 없는 남성 살인자 잭 더 리퍼의 허상에 너무도 익숙해진 우리는 그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실크해트와 망토 차림으로 피에 젖은 칼을 휘두르는 그가 얼마나 많은 포스터와 광고와 버스 옆면에 등장하는지 모른다. 술집에서는 그의 이름이 붙은 칵테일을 팔고, 상점들은 간판에 그의 이름을 써 넣는다. 세계 곳곳에서 런던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화이트채플 순례에 나서고 그의 범죄를 주제로 한 박물관을 찾는다. 이제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핼러윈에 잭 더 리퍼로 분장하고, 그가 되었다고 상상하고, 그의 천재성을 기리고, 여자들을 죽인 자를 웃음거리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잭 더 리퍼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1888년에 그를 둘러싸고 있던 일련의 가치관, 즉 여자들에게 너희는 가치가 적으니 치욕과 학대를 당하리라고 가르치는 그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쁜 여자’는 벌 받아 마땅하고 ‘매춘부’는 여성의 하위종이라는 관념을 강화하는 것이다. 본문 402~403쪽(나오며 _ ‘그저 매춘부일 뿐’)

  목차

추천의 말 다섯 인생의 궤적 들어가며: 두 도시 이야기 폴리 CHAPTER 1 대장장이의 딸 CHAPTER 2 피바디 자선 주택 CHAPTER 3 비정상의 삶 CHAPTER 4 집 없는 피조물 애니 CHAPTER 5 군인과 하인 CHAPTER 6 채프먼 부인 CHAPTER 7 악마의 음료 CHAPTER 8 흑발의 애니 엘리자베스 CHAPTER 9 토르슬란다 소녀 CHAPTER 10 ‘공공의 여자’ 97번 CHAPTER 11 이민자 CHAPTER 12 키다리 리즈 케이트 CHAPTER 13 일곱 자매 CHAPTER 14 케이트와 톰의 발라드 CHAPTER 15 자매를 지키는 사람 CHAPTER 16 ‘아무것도 아닌’ 메리 제인 CHAPTER 17 마리 자네트 CHAPTER 18 즐거운 인생 나오며: ‘그저 매춘부일 뿐’ 어떤 삶의 물건들 감사의 말 주 참고 문헌 찾아보기

  저자 및 역자 소개

핼리 루벤홀드 저/오윤성 역 : 핼리 루벤홀드 저
역사가·저술가·방송인. 18~19세기 영국 여성사를 전문으로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영국 리즈대학에서 영국사와 예술사, 역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 내셔널포트레이트갤러리의 큐레이터, 미술품 딜러, 대학 강사로도 활동해 왔다. 기록보관소에 묻혀 있던 자료들을 발굴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성의 이야기와 희생자의 삶에 빛을 비추고 역사적 맥락을 되찾아 주는 저작들을 2005년부터 꾸준히 집필해 왔다. 2019년에 출간된 루벤홀드의 대표작 『더 파이브』는 영어권 논픽션을 대상으로 한 영국 최고 권위의 베일리 기퍼드상을 수상했고,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헤이페스티벌 올해의 책, 굿리즈초이스어워드 역사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밖에 『레이디 워슬리의 변덕(Lady Worsley’s Whim)』(2008)은 2015년 BBC에서 〈레이디 W의 스캔들(The Scandalous Lady W)〉로 영화화되었고, 『코번트가든의 여자들(The Covent Garden Ladies)』(2005)은 2017~2019년에 영국과 미국에서 서비스된 드라마 시리즈 〈매춘부(Harlots)〉에 모티브를 제공했으며, 『매춘부의 핸드북(The Harlot’s Handbook)』(2007)은 BBC에서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