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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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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파주 : 문학동네, 2023.
295 p. ; 20 cm.
₩16800


  소장사항 : 노원을지대학교병원 도서실 [ 813.6 정54서 ]

등록번호 소장정보
CM003733 대출가능
  • Vol.Copy :
  • 별치기호 :
  • 소장위치 : 신착도서서가
  • 을지 도서대출 신청 가능 권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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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 통일신라의 휘황찬란한 수도 금성, 세상 어디에도 없는 황금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미스터리 대수사극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큰 전쟁이 끝나고 세 나라가 하나가 되어 표면적으로는 평화를 맞이했지만 내부에는 붕괴의 조짐이 도사리고 있던 통일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 번 본 것은 결코 잊지 않는 두뇌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간파하는 비상한 추리력을 가진 설미은은, 여성으로 태어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당나라 유학이 내정될 만큼 명석했던 오빠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삶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가족을 휩쓴 수많은 죽음 때문에 셋째였지만 맏이가 된 큰오빠 설호은이 가문을 되살리기 위해 비범한 능력을 지닌 미은을 이용하기로 한 것. 호은의 책략에 의해 미은은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죽은 오빠 ‘자은’의 이름으로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다. 그렇게 성인이 될 때까지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기며 공부를 끝마친 설자은은 다시 자신의 고향, 신라의 수도 금성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이에게는 비범한 사건이 찾아오는 법일까? 자은은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기이한 사건들을 마주치게 된다. 자은은 당나라의 등주에서 신라의 당은포로 향하는 배 위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을 만나고, 금성의 대저택에서는 연유를 알 수 없는 업화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이른 전쟁 영웅에 얽힌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며, 신라 육부 여인들의 길쌈 대회에서 일어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한다. 이윽고 자은의 명석함은 신라의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 왕이 주최한 연회에 초대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연회가 한창 무르익어갈 때쯤 월지에서 엎드린 채 죽어 있는 시신이 떠오른다. 사건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기 전까지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돌아갈 수 없다고 엄포를 놓는 왕, 왕의 눈에 들 수 있도록 자은에게 재주를 드러내기를 종용하는 호은, 그저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자은. 과연 자은은 그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나는 피하지 않는다.” 왕이 답했다. 자은은 돌연 왕이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저리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지? 뻐근할 법도 한데 처음의 자세 그대로였다. “그대들도 이 일의 수면 아래를 볼 때까지 돌아가지 못한다. 마침 재주가 있다 하는 이들을 불러모았으니 그 재주를 써 명명백백한 바닥을 드러내라.” 수면 아래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밤의 월지, 검은 물을 손으로 퍼내라는 명처럼 들렸다. _「월지에 엎드린 죽음」, 255쪽 정세랑이 탄생시킨 또하나의 독보적인 캐릭터, 설자은 “네가 쓰이지 않으면 신라가 잃는 것이라고 했지. 자, 내가 네게 쓰일 기회를 주겠다. 너는 이제 어쩔 것이냐?” 설자은은 『시선으로부터,』의 심시선, 『보건교사 안은영』의 안은영에 이어 정세랑이 탄생시킨 또하나의 독보적인 캐릭터라고 할 만하다. 7세기에 탐정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신라 탐정 설자은이라고도 말해볼 수 있을 설자은이 지닌 진짜 능력은, 일어난 일의 구조를 간파하는 뛰어난 추리력이 아니라 사람의 안쪽을 깊이 헤아리는 능력일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른 탐정들과 설자은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그 따뜻한 마음에 있다. 설자은 외에도 이 이야기에는 매력적인 인물들로 가득하다. 언제나 생긍생글 웃는 얼굴로 능청을 떨지만 부탁한 건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손재주를 지닌 망국 백제 출신 장인 목인곤, 뛰어난 머리를 지녔지만 어딘지 한군데가 고장난 듯한 윤리관을 지닌 설호은, 산학에 능하며 반듯한 균형 감각을 가진 설도은, 누구보다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마음을 지닌 산아, 그리고 보는 이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왕까지. 이처럼 개성 강한 인물들이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우러져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설자은 시리즈’를 읽는 또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자은은 열흘 안에 네 여자 중 누가 간절히 금전의 모가 되고 싶어하는지, 그중에 또 누가 어떻게 베틀을 부술 수 있었을지 밝혀내야 했다. 길쌈 대회가 끝나면 여자들은 원래대로 집안으로 숨겨질 테고, 일어난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기 십상일 터였다. 다음 여름이 될 때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곪은 채로 둘 수는 없었다. 염을 품고는 좋아하는 일도 좋아할 수 없고, 아끼는 이도 아낄 수 없다. 처음엔 도은을 위해서 시작했지만, 자은의 염려는 어느새 육부 여자들 전체에게로 번지고 있었다. _「보름의 노래」, 205~206쪽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한 정세랑은 오래전부터 본격적으로 과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자 하는 소망을 비춰왔다. 작가는 통일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을 구상하고 경주로 첫 조사 여행을 떠난 것이 2016년이라 밝혔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의 첫 에피소드이자 ‘설자은 시리즈’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갑시다, 금성으로」가 미스터리 소설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에 게재된 것이 2018년이니,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가 완성되기까지 최소 7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금성의 흔적을 찾아 경주로 수차례의 답사를 다녀오고, 수년간의 자료 조사를 거친 뒤에야 시리즈의 첫 권을 내놓을 수 있었다. 여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먼 과거를 살아간 사람들이 우리 앞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게 된 것이다. 정세랑은 ‘작가의 말’에 과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을 쓰고자 했을 때 시기를 통일신라시대로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며, “풍요 속에 숨어 있는 붕괴의 씨앗”을 품은, “한껏 융성을 향해서 가다가 어느 순간 무너지기 시작”(‘작가의 말’)한 시대를 거울삼아보고 싶었다고 썼다. 그 말대로 평화로우면서도 혼란이 잠재되었던 시기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펼쳐지기에 안성맞춤인 무대일 것이다. 정세랑의 마법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추리소설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적 쾌감을 주는 트릭들도 물론 등장하지만 정세랑은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작품의 배경은 680년대 후반, 1300년이나 과거의 이야기임에도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현재의 우리를 비춰보며 그 시대의 사건들을 지켜보는 일은 즐거운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설자은 시리즈’는 최소 세 권으로 기획된 시리즈로 2권 『설자은, 불꽃을 쫓다』(가제), 3권 『설자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가제)가 이어 출간될 예정이다. 작가는 열 권 이상의 시리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자 희망을 밝혔다. 앞으로 오래도록 이어질 새로운 시리즈의 탄생을 함께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이 책을 집어든 분들이 한순간만이라도 시간 여행의 감각을 느끼신다면 좋겠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 직접 간 듯한 낯선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다. 모두가 부를 줄 알았으나 이제는 한 마디도 남지 않은 노래를 함께 흥얼거릴 수 있다면, 지금 우리의 노래가 천 년 후에도 잊히지 않는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_「이야기가 발생한 틈새들─‘설자은 시리즈’가 탄생하기까지」, 『정세랑 작가 노트』에서 인물 소개 설자은 “이름을 얻은 걸까, 빼앗긴 걸까.” 원래는 열한 남매 중 여섯째 설미은이었다. 한 살 많은 다섯째 설자은이 당나라 유학을 앞두고 급환으로 사망하면서, 셋째 설호은의 책략으로 설자은이 되었다. 얼굴이 닮았고 비슷하게 머리가 좋다는 이유였으며 길게 고민할 틈은 없었다. 집안에 갇혀 살기 싫어 설자은이 되기로 택했으나, 이어진 날들이 순탄치 않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듯하다. 유학을 그리 길게 갈 계획도 아니었는데, 나당 전쟁으로 두 나라 사이에 사신단이 오가지 않은 동안 그만 고립되고 말았다. 가지고 간 걸 다 팔고 학사의 스승과 동료들이 주는 일감을 얻어 겨우 살아남았다. 고독과 허기에 지친 채, 책 상자들을 짊어지고 신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엉겨붙은 식객이 백제인 목인곤. 금성에서 진정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 목표이건만 거듭 불미스러운 일들과 맞닥뜨린다. 목인곤 “나를 더 쓰고 부리시오. 이 집에서 먹고 쓰는 것을 갚을 수 있게.” 탑을 짓는 기술이 있다고 주장하나 아직 확인할 길이 없는 백제 출신 장인. 큰 바다를 건너는 배 위에서 설자은을 만났다. 설자은보다 대여섯 살 많지만 대충 친우가 되기로 했다. 만듦새가 뛰어난 물건을 보면 일단 백제의 것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백제는 사라졌지만 백제 출신 장인에 대한 선호는 여전히 남아 있어, 설자은도 급하면 목인곤을 그런 식으로 내세운다. 눈이 정확하고 손이 빨라 만들거나 고치지 못하는 것이 없다. 다른 점은 다 자신이 나은데, 사람 사이의 일을 간파하는 것은 설자은이 낫다고 인정한다. 설자은의 성품을 재미있어하기 때문에 더 대단한 가문의 식객이 될 수 있지만 머무는 중이다. 설호은 “우리가 진짜 칼을 받았을 때 너는 나무칼을 쥔 채, 네가 쓰이지 않으면 신라가 잃는 것이라고 했지. 자, 내가 네게 쓰일 기회를 주겠다. 너는 이제 어쩔 것이냐.” 셋째로 태어났으나 위의 두 형이 전사하는 바람에 첫째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호은이 그럭저럭 영민하긴 하나 어딘가 머릿속이 비틀린 인물이라는 평을 듣는다는 것. 이미 치른 값이 아깝다는 이유로 미은을 자은으로 둔갑시킨 것도 호은의 별난 선택이었다. 누이인 자은과 도은마저 호은의 언행은 매번 상당히 경계하며 받아들인다. 위태로운 정국에 어떻게든 망하지 않고 계속해나가기 위해 자은을 활용하려는 욕심이 있다. 두 번의 파혼에 대한 소문이 돌아 서라벌 여자들의 적이 되었다. 인곤이 자은에게 붙어 있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설도은 “매일 똑같이 살면 한 계절을 돌아봐도,한 해를 돌아봐도 하얗게 기억이 나지 않아. 어쨌든 올해는 기억날 일이 가득이지.” 자은의 사정을 자세히 아는 바로 아래 여동생. 자은의 귀환을 반긴다. 산학에 밝아 집안의 큰 살림을 맡아 꾸려나가고 있다. 도은 모르게 들고 나는 물건은 있을 수 없다. 자은이 맡은 일에 대해 의논할 때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곧바로 핵심을 파악하는 산뜻한 상대다. 제멋대로인 호은에게 휘말리거나 이용당할까, 자은이 늘 걱정한다. 도은 쪽은 자은이 어렵게 얻은 자유로움을 부러워한다. 산아 “걱정하시는 것만큼 저는 약하지 않습니다.” 죽은 자은과 연인이었던 진골 여성. 그 내막을 몰랐던 자은은 산아가 주었던 증표인 작은 불상을 그만 어려운 시절 팔아먹고 말았다. 죽은 자은과의 좋은 기억과 애틋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자은의 명민함을 높이 평가해, 비밀스럽게 다뤄야 할 일이 생기자 해결을 부탁해온다. 자은이 장안에 있을 때 상대등의 아들 진오룡과 혼인했다. 자은은 늘 산아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복잡한 상황상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 왕 “내가 베라는 것을 베어라. 또 네가 베어야 할 것을 베어라. 보름마다 이곳으로 와 무엇을 베었는지 고하라.” 신문왕. 그러나 이 이야기 속의 묘사는 허구다. 즉위하자마자 반란을 진압하고 나라의 기틀을 새로 잡았다고 할 만한 여러 변화를 주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의 뒤를 이은 강력함과 단호함으로, 경탄만큼 두려움의 대상이지 않았을까? 자은은 처음 왕을 보았을 때부터 이질감과 공포를 느꼈으나, 뜻한 바와 달리 왕에게 독특한 방식으로 쓰이게 된다. 사건 소개 「갑시다, 금성으로」 “차갑게 식은 장신구 상인이 발견된 것은 해가 떠오르며 안개가 걷힌 직후였다.” 설자은이 만나는 첫번째 사건. 어린 시절 죽은 오빠를 대신해 남장을 하고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자은은 오랜 공부를 마치고 사신단을 따라 신라로 돌아오는 배에 오른다. 큰물을 건너는 일에 위험이 따르던 시기, 나라와 나라를 오가는 배에는 각기 다른 사정을 지닌 사람들이 탑승해 있다. 그런데 항해가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어느 아침, 한 남자가 목이 졸린 채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와 동승한 아내와 딸은 배 안에서 자취를 감춘 상황. 의문스러운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려 하는 설자은에게, 목인곤이라는 생글생글 웃는 낯의 백제 출신 남자가 자꾸 끼어든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조사를 해나가는데, 과연 남자의 죽음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손바닥의 붉은 글씨」 “업화業火라 덮어놓고 지나가는 죽음을 제대로 들춰본다면, 정말 다 업화일까?” 목인곤을 식객으로 들여 함께 금성으로 돌아온 설자은. 자은의 앞에 죽은 오빠와 모종의 애정 관계가 있었던 듯한 지체 높고 아름다운 여성 산아가 나타난다. 산아는 어린 시절 총명했던 자은의 지략을 빌려 아버지에게 닥친 의문스러운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어느 날 손바닥에 떠오른 붉은 글씨와 함께 의식을 잃은 채 깨어나지 않고 있는 산아의 아버지. 사람들은 그가 지은 죄에 대한 업화로 쓰러진 것이라 수군거리는데, 과연 진실은? 자은은 산아를 돕기 위해 금성의 호화 저택이 모인 곳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대저택, 사혈택으로 향한다. 「보름의 노래」 “베틀이 엉망으로 부서져 있었어. 내 차례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이를 어째!” 매년 여름이면 금성에서 펼쳐지는 성대한 베 짜기 시합인 길쌈 대회. 두 편으로 나뉜 서라벌의 여성들은 이때만큼은 열의를 품고 상대보다 더 곱고 긴 베를 짜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그러던 중 자은의 동생 도은이 베틀의 북을 잡았을 때 누군가에 의해 베틀이 부서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자은은 동생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범인을 찾아나선다. 대회에서 우승해 궁궐로 들어가고 싶은 이들은 모두 넷, 그들 중에 범인이 있다! 「월지에 엎드린 죽음」 “그대들도 이 일의 수면 아래를 볼 때까지 돌아가지 못한다. 마침 재주가 있다 하는 이들을 불러모았으니 그 재주를 써 명명백백한 바닥을 드러내라.” 신라의 왕이 월지에서 연 연회에 초대를 받은 설자은.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연회가 아니라 왕이 자신의 곁에 둘 인재를 발굴하기 위한 평가의 장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자은에게 새로운 신분을 주고 당나라로 떠나게 한 장본인인 설호은은 가문을 위해 ‘지나치게 눈길을 끌지 말되 재치는 두드러지게 뽐내라’고 주문하지만, 자은은 왕의 눈에 띄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런데 연회가 진행되던 도중, 왕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흰 매를 부리던 매잡이의 시체가 연못에서 떠오른다. 그리고 왕은 매잡이의 죽음의 전말이 밝혀지기 전까지 연회의 밤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다. 자은은 과연 ‘지나치게 눈길을 끌지 않고’ 사건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까?

  본문중에서

“금성은 어떤 곳입니까?” 젊은 선원은 가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금성, 서라벌, 왕경 뭐라고 부르든 태어난 곳을 떠올리 것만으로도 자은 안에 차오르는 것이 있었다. “또 없는 곳이오. 어딜 가도 금성 같은 곳은 없을 테요. 어느 방향으로 서도 금과 유리와 다른 귀한 것들로 조각한 땅 같지요.” _「갑시다, 금성으로」, 14쪽 낭도였나, 낭도가 아니었나. 다섯째인가, 여섯째인가. 자은인가, 미은인가. 이름을 얻은 걸까, 빼앗긴 걸까. _「갑시다, 금성으로」, 26쪽 차갑게 식은 장신구 상인이 발견된 것은 해가 떠오르며 안개가 걷힌 직후였다. 앞쪽 갑판에 쓰러져 있는 그의 목둘레에는 목이 졸린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 시신을 둘러싸고 선 사람들은 죽은 자를 아연히 내려다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이자를 죽인 자는 태연한 얼굴로 우리와 함께 서 있을 것이다…… “여자들은 어디 있소?” 자은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선장이 사람을 갑판 아래로 내려보냈다. 그런데 돌아온 이는 혼자였다. “여자들이…… 없는데요.” “그 자리에 없다는 거요, 아예 이 배에 없다는 거요?” 급히 수색을 했지만 여자들은 흔적도 없었다. 남자를 죽이고 여자들은 밤바다에 던져버린 것인가? 머릿속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_「갑시다, 금성으로」, 30~31쪽 “전쟁을 겪고,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덕이 있는 사람도 평온치 못한 죽음을 맞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승에는 중생이 이해할 만한 저울 같은 게 없지요. 삼도천을 건너면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 해도 독군님은 이렇게 가시면 안 됩니다. 독군님이 우리를 이끌고 그 어려운 길을 걸어오셨는데 노환도 아니고 병환도 아니고 비겁하고 사악한 살煞에 돌아가시다니요……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옳은 일만 찾아오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까지 비틀린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_「손바닥의 붉은 글씨」, 89쪽 “한 명쯤은 기억하고 있어도 좋을 뻔했어.” 인곤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무엇을?” “이 융성한 날들을 위해 누가 죽어야 했는지. 어떤 싸움을 했는지. 한 명쯤은 계속 곱씹고 있어도, 사로잡혀 있어도 좋지 않았겠는가? 천년왕국을 고대하며, 그것이 무엇 위에 세워지는지 이 흥청망청한 거리는 다 잊은 것 같군.” “천년이라…… 이다음 천년이라.” 자은은 사람들이 잊고 잊고 또 잊는다 해도 이 활기와 온기로 가득한 거리 위로 어둠이 드리워지지 않기를 기원했다. 누구에게 기원하는지도 정하지 않은 채. _「손바닥의 붉은 글씨」, 174쪽 자은은 열흘 안에 네 여자 중 누가 간절히 금전의 모가 되고 싶어하는지, 그중에 또 누가 어떻게 베틀을 부술 수 있었을지 밝혀내야 했다. 길쌈 대회가 끝나면 여자들은 원래대로 집안으로 숨겨질 테고, 일어난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기 십상일 터였다. 다음 여름이 될 때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곪은 채로 둘 수는 없었다. 염을 품고는 좋아하는 일도 좋아할 수 없고, 아끼는 이도 아낄 수 없다. 처음엔 도은을 위해서 시작했지만, 자은의 염려는 어느새 육부 여자들 전체에게로 번지고 있었다. _「보름의 노래」, 205~206쪽 “너도 지금 그 자리에 흡족한 채 그대로 머물면 안 된다. 계단 몇 칸쯤은 힘내 올라가주어야 해.” “먹을 것 부족하지 않고, 입을 것도 없지 않으며, 땔감 또한 수북한데…… 과욕을 부리는 게 아닙니까?” “과욕? 지금 가진 것들이 언제까지고 그대로일 성싶으냐? 다음 역병은? 다음 전쟁은? 흉년이 이어지고 대수가 휩쓸면? 정쟁의 칼이 갑자기 우리와 가까운 곳을 향하면? 미리 대비해두지 않았다가는 굶고 병들고 흩어지고 죽을 것이다. 너는 내가 쓸 수 있는 또하나의 말이다. 그걸 잊지 마라.” _「월지에 엎드린 죽음」, 233~234쪽 “이자는……” “아까 그 매잡이잖아.” “이게 무슨 일이야? 멀쩡하던 사람이.” 자은은 왕을 돌아보았다. 왕은 여전히 그대로 앉아 있었다. 돌로 깎은 절벽 같은 이마에 주름 하나 생기지 않았다. 다만 한 손을 올렸고, 그러자 창을 든 병사들이 담벼락을 따라 주욱 둘러섰다. 집에 가긴 글렀구나, 자은은 생각했다. 그리고 매잡이의 죽음이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다른 죽음을 불러오게 될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_「월지에 엎드린 죽음」, 252~253쪽 “나는 피하지 않는다.” 왕이 답했다. 자은은 돌연 왕이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저리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지? 뻐근할 법도 한데 처음의 자세 그대로였다. “그대들도 이 일의 수면 아래를 볼 때까지 돌아가지 못한다. 마침 재주가 있다 하는 이들을 불러모았으니 그 재주를 써 명명백백한 바닥을 드러내라.” 수면 아래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밤의 월지, 검은 물을 손으로 퍼내라는 명처럼 들렸다. _「월지에 엎드린 죽음」, 255쪽

  목차

갑시다, 금성으로 손바닥의 붉은 글씨 보름의 노래 월지에 엎드린 죽음 작가의 말

  저자 및 역자 소개

정세랑 저 : 정세랑 저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