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ATA[[을지대학교 성남캠퍼스] (성남)서평쓰기 ]]> http://lib.eulji.ac.kr/lib/community/sc.csp?sccode=caeulreview ko 2018-09-21T00:01:01+09:00 Copyright 을지대학교 성남캠퍼스 All right reserved <![CDATA[(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 ]]> http://lib.eulji.ac.kr/lib/community/view.csp?sccode=caeulreview&scKey=8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은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자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쓴 실용적인 논문 작성 지침서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뛰어난 논문 작성법 책은 나온 적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에코가 이 책을 통해 공부하는 법, 글을 쓰는 기술, 정리된 사고를 하는 법 등의 중요한 노하우들을 공개함으로써 단순한 원고 작성법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명성과 학문적 성과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우리에게도 세 편의 묵직한 소설([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과 기호학에 대한 저술들, 그리고 유머러스한 에세이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 소개되어 대단한 호응을 얻었다. 이런 에코가 새삼스럽게 논문 작성 지침서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졸업 논문에 직면한 대학생들이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한 충고를 해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하게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논문 작성법 강의를 넘어서, 여러 학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적인 학자들에게도 유용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앞을 다투어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그 중요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에코는 이 책에서 학문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최초의 단계로서 졸업 논문이 갖는 중요성에서 시작하여 그 논문이 갖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예시해 주고 있다. 또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학생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그리고 졸업 논문을 제대로 작성한다는 것은 굳이 학문의 길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여러 의미들을 갖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불리한 환경에서도 충분히 훌륭한 논문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시골 도서관에서 어떤 주제에 대한 참고 문헌 목록을 작성하는 실험을 해보이기까지 한다.

에코는 신판에 붙인 서문에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학문적 겸손]을 설명하는 부분에서(205페이지) 그는 무명의 수도사 발레가 남긴 책에서 중요한 실마리를 얻었던 경험을 기록하였다. 가장 훌륭한 생각은 유명 저자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초판이 나왔을 때, 유명한 비평가 베니아미노 플라치도는 발레 수도사가 실존 인물인 것 같지 않다고 [레푸블리카]에 평을 실었다. 에코는 친구인 플라치도를 집으로 데려가서 발레의 책을 보여 주고, 자기가 표시해 놓은 부분을 읽어 주었다. 그리고 에코는 발레의 그 구절이 자기에게 어떤 실마리도 될 수 없는 내용임을 깨닫는다. 에코는 발레의 책의 내용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책을 [읽다가] 영감을 받았던 것이다.

에코는 이 에피소드를 이렇게 요약한다. [발레 수사는 그 생각의 아버지는 아닐지라도 산파(産婆)였다.] 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저자가 꼭 말하지 않은 착상을 무의식적으로 저자에게 돌리곤 한다. [연구라는 모험은 신비롭고 매력적이며 수많은 놀라움들을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연구라는 것은 발레 수사를 발견하고, 또한 스스로가 다른 누군가에게 발레 수사가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에코는 이 깨달음을 기념하기 위해 [장미의 이름] 서문에 그 필사본의 저자로서 발레 수사를 등장시킨다.

이 책은 이탈리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전문적인 학자들이나 우리 나라의 대학생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극히 피상적인 방식에서만 그러하다. 논문 또는 학문의 기본적인 방향은 누구에게나 공통이기 때문이다. 대학 4년 동안 제대로 논문 작성 방법을 교육받지 못하는 우리 나라 대학 교육 현실에 비추어 이 책은 대학생들에게 매우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예와 함께 전개되는 에코의 종횡무진의 서술을 좇다 보면 글읽기의 즐거움 외에도 글을 쓰는 기술, 정리된 사고를 하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도 얻을 수 있는 독특한 책이다. ]]>
문거성 2018-09-04T13:38:26
<![CDATA[색맹의 섬 :올리버 색스가 들려주는 아주 특별하고 매혹적인 섬 이야기 ]]> http://lib.eulji.ac.kr/lib/community/view.csp?sccode=caeulreview&scKey=7 첫번째 여행 - ‘색맹의 섬’을 찾아서
어린 시절 올리버 색스는 종종 편두통으로 인한 색각 이상에 시달리곤 했다. 일시적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험은 그에게 두려움과 함께 평생 색깔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곧 색맹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적록색맹처럼 흔한 부분색맹이나 사고 등에 의한 후천적 색맹이 아니라 선천적인 완전 색맹, 그러니까 태어날 때부터 아무런 색깔에 대한 관념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만일 그런 사람들만이 모여 사는 섬이 있다면, 그러니까 “자기만 완전히 색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색맹 부모와 조부모, 색맹 이웃, 선생님까지도 색맹인 곳, 색에 대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 대신 다른 형태의 지각 능력, 다른 형태의 관찰력이 증폭돼 발달한 문화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느 날 우연히 그런 섬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올리버 색스는 안과전문의 로버트 와서먼, 색맹전문가(이자 본인이 선천적 완전 색맹이기도 한) 크누트 노르드뷔와 함께 태평양 한가운데의 조그만 섬 핀지랩으로 향한다. 그는 색맹이기에 겪어야 하는 이곳 원주민들의 아픔과 제약에 안타까워하는 한편, 그것을 보완하는 풍부한 명암과 질감의 세계의 이점에 감탄하기도 한다. 또한 파라다이스와도 같은 이국의 풍광과 동식물에 매혹되면서도 그곳이 겪은 식민 수난의 역사와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에 함께 아파하는데…….

그러나 핀지랩이 정말로 색맹의 섬, 내가 꿈꾸고 혹은 바랐던, 웰스의 소설에 나올 법한 그런 섬이었을까? 온전한 의미에서 그런 곳이라면 오랜 세월에 걸쳐 나머지 세계와는 고립된 채 색맹만 모여 사는 곳이 되어야 한다. 핀지랩 섬이나 만드의 핀지랩인 거주 지역은 분명히 그런 곳이 아니라 소수의 색맹 인구가 다수인 정상 색각 인구 안에 섞여 사는 사회였다.
그러나 우리가 핀지랩과 폰페이에서 만났던 색맹 주민들 간에는 (혈통적으로만이 아니라 직관적으로도, 인식상으로도) 뚜렷한 하나의 친족 관계가 있었다. 그들은 보자마자 곧바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했고 언어와 지각 능력에 공통점이 있었으며, 그것은 크누트에게까지 확장되었다. 그리고 핀지랩의 모든 사람이 색맹이 되었건 정상 색각이 되었건 간에 마스쿤(핀지랩 주민들이 색맹을 부르는 말)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마스쿤으로 태어난 이들은 색을 보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밝은 빛을 견디지 못하며 사물의 세세한 부분을 볼 수 없는 장애까지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핀지랩의 아기가 눈을 찌푸리고 빛을 보면 고개를 돌리기 시작할 때면 적어도 그 아기가 지각하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그 아기에게 특별히 필요한 환경, 그 아기의 특별한 능력이 무엇인지를 사회 전체가 이해하며, 심지어는 그것을 설명하는 신화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핀지랩은 하나의 색맹의 섬이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색맹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은 거의 어김없이 철저히 고립되거나 오해받으며 살아가지만, 여기에서는 마스쿤으로 태어난 그 누구도 그런 일을 당하지 않는다.

두번째 여행 - 괌, 리티코-보딕 그리고 소철
어느 날 올리버 색스는 괌의 백인 의사 존 스틸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괌의 풍토병인 ‘리티코-보딕’이 색스가 연구한 뇌염후파킨슨증과 증세가 비슷하니 한번 와서 환자들을 살펴봐달라는 것이다. 리티코-보딕은 신경마비 증세를 보이는 ‘리티코’와 파킨증병이나 치매와 유사한 ‘보딕’의 합성어로, 지난 40여 년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 원인을 규명하려 했으나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불치병이다. 올리버 색스는 괌을 방문해 존 스틸과 함께 여러 환자들의 상태를 살펴보면서 이 병의 수수께끼를 파고든다. 이것은 어떤 유전자 이상 때문일까, 아니면 환경적 요인, 괌의 차모로족이 즐겨 먹는 소철 씨의 독소 때문일까? 원인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중증 환자들의 고통스런 모습을 연민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올리버 색스는 눈물짓는다.

나는 상태가 지독한 말기 리티코와 보딕 환자들을 보고 나니 심신이 고갈되어 여기서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 침대에 뻗어버리든지 아니면 저 태고의 산호초로 돌아가 헤엄을 치든지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가 왜 그렇게 버거워했는지 모르겠다. 뉴욕에서 보는 환자들도 대부분이 이미 움직일 수 없으며 치료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신경위축성경화증은 드물다. 두세 해에 한 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중증 리티코-보딕 환자만 40명 넘게 돌보는 존은 이런 감정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존이 환자들과 함께 있을 때면 쩌렁쩌렁한 직업적인 목소리와 낙관적이며 유쾌한 태도로 환자들에게 기운을 주려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는 겉모습일 뿐 속내는 너무나 섬세하고 여린 사람이다. 필이 나중에 해준 얘긴데 존은 혼자 있을 때 아니 혼자라고 생각할 때면 환자들의 고통,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 우리의 무능함에 눈물 흘린다고 한다. ]]>
문거성 2018-08-30T16:42:40
<![CDATA[(성공적인 웹 프로그래밍)PHP와 MySQL ]]> http://lib.eulji.ac.kr/lib/community/view.csp?sccode=caeulreview&scKey=6 [성공적인 웹 프로그래밍 : PHP와 MySQL]제4판!
웹 응용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PHP와 MySQL 분야 최고의 베스트셀러!

PHP와 MySQL을 사용한 데이터베이스 기반 웹 프로그래밍의 가장 확실한 안내서

PHP와 MySQL은 데이터베이스 기반 웹 응용 프로그램을 짧은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이상적인 오픈 소스 기술이다. PHP는 개발자가 고성능의 웹 응용 프로그램을 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설계된 강력한 스크립트 언어이고, MySQL은 빠르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이다. PHP와 MySQL은 쉽게 통합할 수 있으며, 이것들을 사용하면 다이내믹한 인터넷 컨텐츠를 간단하게 구현할 수 있다.
이 책은 효과적이고 인터랙티브한 웹 응용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PHP 언어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주고, MySQL을 설정하고 동작시키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렇게 준비가 끝나면 PHP를 사용해서 데이터베이스 서버와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실용적이고도 편리한 이 책은 현실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실질적인 예제들 가지고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사용자 인증, 장바구니 구현, PDF 문서 만들기, 다이내믹한 이미지 처리, 이메일 전송과 관리, 토론방 만들기, XML을 사용하여 웹 서비스에 연결하기, 상호 작용하는 Ajax를 사용하는 웹 2.0 응용 개발까지 다루고 있어 정말 다양한 내용을 배울 수 있다.
4판은 PHP 5에서부터 5.3에 담긴 새로운 내용인 네임 스페이스와 MySQL 5.1에서 도입된 기능들을 소개하기 위해 완전히 업데이트 되었고, 새로 개정되었으며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PHP와 MySQL을 사용하는 프로그래머를 위한 최고의 참고서. 강력 추천!'
- The Internet Writing Journal
'웹 응용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PHP와 MySQL의 훌륭한 입문서이자 최고의 매뉴얼'
- WebDynamic

CD-ROM
본문 예제 소스 코드, 원서 PDF
Linux/Unix, Windows, Mac OS X 등
각 운영체제별 PHP 및 MySQL 인스톨 버전 포함

분류
웹 프로그래밍 / PHP 5.3, MySQL 5.1

수준
초/중급 ]]>
문거성 2018-08-30T16:16:20
<![CDATA[생각하는 프로그래밍:프로그래밍 본질에 관한 15가지 에세이 ]]> http://lib.eulji.ac.kr/lib/community/view.csp?sccode=caeulreview&scKey=5 문거성 2018-08-17T17:01:00 <![CDATA[(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라틴어 수업 ]]> http://lib.eulji.ac.kr/lib/community/view.csp?sccode=caeulreview&scKey=4 5년 연속 수많은 대학생, 청강생들을 매혹시킨 명강의
지식을 넘어 삶의 근본을 다지는 ‘라틴어 수업’


2010년 하반기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진행됐던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강의는 입소문을 타고 서강대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연세대, 이화여대를 비롯해 신촌 대학가를 벗어난 지역 학교 학생들과 일반인들까지 찾아오기에 이른다. 이것이 당시 언론에 ‘화제의 명강의’로 기사화되어 더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라는 저자의 이력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저자의 강의가 인기를 끈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라틴어의 체계, 라틴어에서 파생된 유럽의 언어들을 배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음식, 놀이 문화, 사회제도, 법, 종교 등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가 유학 시절 경험했던 일들, 만난 사람들, 공부하면서 겪었던 좌절과 어려움, 살면서 피할 수 없었던 관계의 문제, 자기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성찰 등 우리 삶에 맞닿아 있는 화두들이 수업에 녹아 있었다. 종합 인문 교양 수업과 같았던 저자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사고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고, 더 나아가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수업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서양 문명의 근원, ‘라틴어’로 들여다보는 그리스 로마 시대

바티칸 대법원의 변호사이자 가톨릭 사제이기도 한 저자는 라틴어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사회상과 문화, 종교 등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저자가 들려주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야기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에도 맞닿아 있다. 한 예로, 책 속에서 소개하는 라틴어 ‘도 우트 데스(Do ut Des)’를 생각해보면, 이 말은 ‘네가 주면 나도 준다’라는 뜻으로 로마법의 채권 계약에서 나온 법률적 개념이다. 저자는 이 말을 통해 과거 로마법상 계약의 기준이 되는 네 가지 도식에서부터 유럽의 세속주의와 상호주의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나아가 상호주의 원칙이 흔들리는 오늘날의 국제 사회에서 이 개념이 왜 과거의 것으로 머무르지 않고 현재에도 중요한지 설명한다.

또 다른 예로 젊은이를 뜻하는 라틴어 ‘유베니스(iuvenis)’는 만 20세부터 25세까지를 가리키는데, 로마법에서 젊은이를 규정하는 연령대가 이렇게 길었던 이유가 군대에 충원할 병사를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이것이 지금에 와서는 유럽인들에게 나이에 대한 강박을 덜어주는 순기능의 역할을 했음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저자가 로마 유학 시절 당시 만난 이탈리아 친구들이 70세 노인을 향해서도 ‘당신은 아직 젊다’라고 말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더하며, 우리 역시 나이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꽃으로 피어나야 할 인생, ‘꽃’보다 ‘뿌리’를 내리게 하는 수업

저자의 수업을 들었던 한 제자는 아직 꽃피지 못한 청춘인 20대에 자신은 이 수업에서 ‘꽃’이 아니라 그 ‘뿌리’를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저자의 수업이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던 단점이 공부하는 데 장점이 되었지만, 그 장점이 훗날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단점이 되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나 자신의 장단점과 집착, 아집은 무엇이었는지 성찰하게 한다. 로마의 묘지에 새겨진 라틴어 문구 ‘호디에 미기 크라스 티비’의 뜻이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것을 설명하며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고, 그를 통해 ‘죽음’이 언젠가는 나의 몫이라는 걸 일깨우며 삶과 죽음이 멀지 않다는 화두를 던진다. 또한 유학 시절 이탈리아어와 영어, 라틴어가 뒤섞인 수업에 대한 어려움, 공부하면서 겪었던 좌절, 한국에 돌아와서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에 절망했던 날들, 그럼에도 희망을 말할 수밖에 없다고 담담히 이야기하지만 그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와 ‘나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단초가 된다.

‘라틴어 수업’을 통해 삶의 태도와 방향을 배우다.

- 수업을 통해 스스로와 화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값진 가르침이었습니다.
- 삶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이고 지혜로운 방향 제시를 해주었던 수업입니다. 덕분에 많은 위안을 얻고 삶의 태도를 가다듬어봅니다.
- 강의를 들었던 때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또다시 저는 답안지를 쓰듯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제 인생과 마주하고, 그렇게 제 인생 공부를 다시 하게 됐습니다.
- 삶이 보잘것없다는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이 수업은 목표와 열정을 찾아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긴 터널을 빠져나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요.
('제자들의 편지' 중에서)

책 말미에는 당시 수업을 마치며 저자가 학생들에게 받았던 손편지와 책 출간을 기념해 보내온 제자들의 편지 글이 실려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중간고사 과제로 제출하는 ‘데 메아 비타(De mea vita)’로, A4 한 페이지로 ‘내 인생에 대하여’ 적어내는 일이다. 제자은 이 과제를 통해 처음으로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과거의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지금의 자기를 인정하며, 미래의 자기를 꿈꿀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수업을 통해 삶의 대한 태도와 방향을 성찰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제자들이 보내온 편지에는 자신들이 수업을 통해 얻었던 위로와 힘을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
문거성 2018-08-17T14:50:03
<![CDATA[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 http://lib.eulji.ac.kr/lib/community/view.csp?sccode=caeulreview&scKey=3

사실과 상상으로 빚어낸 조선시대의 책벌레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책만 보는 바보’라 불렸던 이덕무, 그의 눈과 마음이 되어 그려 보는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박지원, 홍대용 들과 협객 백동수,
그리고 개혁 군주 정조와 18세기 조선.

역사 속 인물을 바로 우리 곁으로 불러내기
역사(歷史)라는 오래된 문자[歷지낼 력]를 들여다봅니다. 자연과 사람의 노동이 어우러져 자라는 곡식[벼 화禾+禾]이 심어져 있고,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의 발자국[止]도 보입니다. 틈나는 대로 둘러보며 가꾸는 사람의 애타는 마음도 담겨 있는 듯합니다. 울타리도 둘려져 있습니다.

이렇듯 ‘역사’라는 추상적인 단어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달리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발자국 하나하나가 그 위에 겹쳐지면서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역사는 결국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평범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덕무와 벗들은 지금으로부터 2백여 년 전의 사람들입니다. 흔히 조선 후기의 실학자라고 불리는, 우리에게는 그저 활자로만 다가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짧지 않은 생애 동안 그들도 분명, 우리처럼 온갖 감정,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희망과 좌절도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책, 특히 어린이 책에 씌어진 그들 혹은 역사 속의 인물들에게서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역사 속의 일이라 하여 시제는 과거형이요, 설명 위주의 서술은 건조하기만 합니다. 그들은 우리와는 거리를 둔 채, 그저 책 속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그들을 우리 곁으로, 숨쉬는 인간으로 불러낼 수 없을까? 이 책《책만 보는 바보--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의 기획, 집필은 이런 아쉬움과 바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찍이 이덕무에 매료되어 그의 저술은 물론 그와 관련된 글을 샅샅이 찾아 읽어 온 이 책의 저자는 이덕무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라 자처하며 평생 책을 벗 삼아 살았던 이덕무,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그가 되어 그의 벗들과 그 시대를 불러내 봅니다.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이덕무: 조선 정조 때의 문인, 실학자. 자는 무관(懋官), 호는 청장관(靑莊館) ?형암(炯庵)·아정(雅亭). 서얼 출신으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박학다식하고 시문에 능하여 젊어서부터 많은 저술을 남겼다.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등과 사귀었으며, 중국에까지 알려진 사가시인(四家詩人: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중의 한 사람이다. (...)

이덕무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문에 빠지지 않는 말이 ‘서자(얼) 출신 문인’ ‘박학다식’입니다. 이덕무는 왕족의 후손이지만 그의 아버지가 서자였기에, 태어나면서부터 고단한 삶이 시작됩니다. 내성적인 성격의 그는 집안 형편상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게 되면서, 더욱 말이 없고 조용한, 오직 책 속에서 책과 대화하며 자랍니다.
그에게 책은 단지 보는 대상이 아니라 듣고 보고 느끼는, 살아 있는 존재이며 세계였습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어디에도 낄 데가 없었던 서자 신분의 그가 마음을 둘 곳은 책밖에 없었을지 모릅니다. 이덕무가 책과 벗하고, 책 속의 사람들과 벗하는 나날들은 오래도록 계속됩니다. 책이야말로 그의 으뜸가는 벗으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이덕무는 백탑(원각사지 십층석탑, 지금의 탑골공원 안에 있음)이 있는 대사동(지금의 인사동)으로 이사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그는 비로소 평생지기인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들을 사귀게 됩니다. 이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이서구를 제외하면 모두 서자 출신으로, 힘든 세월을 견디는 데 서로 의지가 되어 준 벗들입니다. 백탑 아래 동네에는 이들 외에도 서자 출신 문인들이 많이 모여 살거나 모이기도 했는데, 그들을 사람들은 ‘백탑파(白塔派)’라 불렀습니다.

이덕무는 백탑 아래서 벗들뿐만 아니라, 더 큰 세계로 눈을 뜨게 해준 스승격인 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과도 깊은 친분을 맺게 됩니다. 홍대용과 박지원, 그리고 이서구는 명문가의 사대부였습니다. 당시 이들의 사귐은 신분과 처지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성품을 먼저 보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느 선비들처럼 유교경전만을 파고들어봐야 벼슬에 나아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기에, 이덕무와 그의 벗들의 관심은 주변의 자연이나 사물, 자신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에 많이 쏠립니다. 이러한 시선은 자연스레 문학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각자의 개성과 감수성이 뛰어난 시와 문장들을 많이 남기고, 《백탑청연집(白塔淸緣集)》과 같은 문집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특히 이덕무와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가 함께 낸 시문집《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은 중국에까지 전해질 만큼 유명한 문집이었고, 시와 문장에 뛰어나다 하여 그들은 ‘사가(四家)’라고 불립니다.

또한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몸소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었기에, 완고한 유교사회의 모순이 여기저기서 꿈틀꿈틀 드러나기 시작하는 조선 후기 사회의 현실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문학청년에서 사회현실에 문제점을 느끼고 새롭게 바꾸어 가려는 개혁적인 사상가로 변모하게 됩니다.

이 책은 이러한 그들의 행로를 찬찬히 따라갑니다. 이덕무처럼 섬세한 저자의 눈길이 그들의 생각이 여물어가는 과정을 좇습니다.


실학자들을 마음으로 이해하기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모두 조선 후기의 실학자라 불립니다. 이 책에서는 굳이 ‘실학’이란 말을 쓰지는 않지만, 이덕무와 벗들의 생각을 통해 실학이 생겨난 배경, 실학자라 불린 사람들이 지닌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책벌레 이덕무와 실학은 어딘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실학을 그저 편리함이나 효율성만을 얻으려는 실용이란 말로 이해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백과사전처럼 해박한 이덕무의 지식은, 풍부한 고증을 거쳐 엄격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그 또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에 입각한 실학적인 학문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책만 보는 바보라 하였지만, 이덕무 그리고 그의 벗들은 결코 책 속에서만 머무르던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이덕무와 벗들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라 불리지만, 이들이 몰두했던 실학(實學)이란 말에서 그저 편리함이나 효율성만을 떠올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종일 들판에서 일하고 돌아와 봐야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넉넉하지 못했던 조선 백성들의 사는 모습, 그것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젊은 그들의 새로운 학문은 비롯되었으니까요. 그들 역시 굶주림의 고통을 겪어 보았고, 날 때부터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은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껴왔기에, 그처럼 뜨거운 마음으로 개혁을 원했는지 모릅니다. 이들을 알고부터 나는 실학이란 말을 대할 때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 잘못된 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