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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 :한국 산업화의 설계자 김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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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 : 한국 산업화의 설계자 김재관 /
= The miracle of Korea started in Munich
= Miracle of Korea started in Munich
파주 : 백년동안, 2022
255 p. : 삽화 ; 23 cm
"우정 김재관 박사 약력" 수록
참고문헌: p. 244-246
[인명] 김재관 1933-2017
₩15000


  소장사항 : 노원을지대학교병원 도서실 [ 990.99 홍92ㅁ ]

등록번호 소장정보
CM003693 대출가능
  • Vol.Copy :
  • 별치기호 :
  • 소장위치 : 단행본서가
  • 을지 도서대출 신청 가능 권수 없음



  책소개 인터파크 바로가기

대한민국 산업화와 선진화의 설계자 김재관 주인공 김재관(1933~2017)은 경기 화성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재학 중 6ㆍ25사변으로 부산으로 피난, 학업을 계속하며 미군 부대 통역을 맡다가 특수강에 눈을 떴다. 졸업 후 한국산업은행에 입사했다가 독일 정부 장학생으로 뮌헨 공과대학에 유학, 금속재료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데마크(DEMAG) 철강 종합기획실에서 근무하며 혼자서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 보고서를 작성하여 1964년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창립 때 해외 유치과학자 1호로 참여, 제1연구부장과 특수기재연구실장, 이후 상공부 초대 중공업차관보, 국방과학연구소(ADD) 부소장을 거치며 포항제철 설립을 비롯해 기계ㆍ조선ㆍ자동차 등을 핵심으로 하는 한국의 중화학공업화와 방위산업 육성의 청사진을 제공했다. 산업화를 넘어 선진화로 도약하기 위해 국가표준 제도가 절실함을 내다보고 한국표준연구소를 설립, 5년간 소장으로 있으면서 한국 표준시 확립 등의 성과를 내고, 헌법에 ‘국가표준’을 명문화하는 데 기여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 인천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와 대학원장을 지내며 후학을 양성했고, 편역서 『묄렌도르프』를 통해 구한말 독일인 재정고문 묄렌도르프가 조선의 산업화에 기여한 면모를 재조명했다. 뮌헨의 박정희에게 건넨 보고서 제5대 대통령 취임 1년 후인 1964년 12월, 박정희는 독일(서독) 방문길에 오른다. ‘고속도로 구상’과 ‘차관(借款) 구걸’, ‘광부와 간호사의 눈물’로 익히 알려진 그 방문이다. 귀로에 오르기 전날 박정희가 뮌헨의 숙소에서 독일 유학생과 교민들에게 베푼 조찬에서 일어난 조그만 사건 하나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다. “여러분들께서 혹시 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해 주십시오.” 박정희를 바라보고 있던 유학생 일행이 일제히 김재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미 유학생들은 김재관이 그동안 준비한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독일 방문 중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유학생들과 교포들로부터 5·16혁명을 일으킨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고, 유학생들은 이를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학생들은 “적어도 우리는 발전적인 의견이나 제안을 하자”고 합의를 했고, 이에 그동안 김재관이 준비한 종합제철 계획안을 전달하기로 한 것이었다. 김재관은 초조한 마음으로 대통령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그의 손에는 책자가 세 권 들려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책자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넸다. 대한민국 산업 발전 역사에 한 획이 그어지는 순간이었다. -“2. 대한민국의 100년 미래를 준비하다” 중 2년여 뒤 KIST가 발족하고 해외에서 연구생활을 하고 있던 과학자 18명을 ‘유치과학자’ 1호로 불러들일 때, 유일하게 비(非)미국유학파로 포함된 게 김재관이었다. 김재관은 한국 최초의 종합제철소 설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대일 청구권자금’ 협상의 전면에 나서 연산(年産) 103만 톤 규모의 제철소 설립안을 관철해 자금을 따내고, 그가 손수 설계하고 말뚝을 박아 구획한 포항제철(현 POSCO) 평면은 20년 동안 생산 규모가 5배로 증가할 때까지도 기본설계 변경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2021년 세밑에 51세 나이로 퇴역한 포스코 ‘고로(高爐) 1호’가 바로 김재관이 고집스레 설계한 103만 톤 그 용광로다. 산업화 넘어 선진화로, 그 이면의 과학자들 정주영의 ‘500원 지폐 거북선’ 전설의 바탕에도, 최초 고유모델 국민차 ‘포니(PONY)’의 배경에도 김재관이 있었다. 그는 KIST 부장ㆍ실장을 거쳐 국방과학연구소(ADD) 부소장으로 방위산업의 기틀을 닦은 김재관은 상공부 초대 ‘중공업차관보’로서 현대의 고유모델 자동차 생산 결단을 이끌어냈다. 신설된 한국표준연구소(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초대 소장으로서 대한민국 ‘시간 독립’을 이뤄 냈다. 표준연 홈페이지(kriss.re.kr) 첫 화면인 그 ‘대한민국 표준시’다. 김재관의 마지막 숙원은 선진국다운 표준제도를 확립하는 일이었다. 헌법에 명문화하는 일이었다. 박정희의 예기치 않은 서거 후에도 표준연 소장으로서 ‘표준제도 조항의 헌법 명문화’를 추진하고, 정치적 격동기에 사인(私人)으로 돌아가서도 국회와 정당, 주무부서를 문지방 닳도록 드나들며 설득한 결과가, 1980년 제5공화국 헌법부터 현행 헌법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제127 2항)라는 조항이다. 윤계섭 서울대 명예교수, 이상희ㆍ채영복 전 과학기술부장관,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 정낙삼 표준연 1호 유치과학자, 신성철 전 KAIST 총장이 추모와 추천의 글들을 썼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 기적 뒤에 가려진 김재관 박사 같은 과학기술자들의 업적과 헌신이 재조명되고 널리 알려질 계기가 되기 바란다”라고 입을 모은다.

  본문중에서

유학생들을 조찬에 초대한 박정희 대통령이 비장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들께서 혹시 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해 주십시오.” 박정희를 바라보고 있던 유학생 일행이 일제히 김재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미 유학생들은 김재관이 그동안 준비한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김재관은 초조한 마음으로 대통령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그의 손에는 책자가 세 권 들려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책자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넸다. 대통령은 책자의 제목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각하, 철강은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필수이고 기반입니다. 자금이 많이 들어 지금 당장은 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사업입니다. 제가 쓴 계획안입니다. 혹시라도 국가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2. 대한민국의 100년 미래를 준비하다, 74~75쪽) (KIST 초대 소장 최형섭은) 미국 전역에 흩어진 한국 출신 연구원들을 만나러 다녔다. 주말도 없이 강행군이었다. 그렇게 해서 1차로 30명을 선발했다. 다시 2차, 3차 인터뷰를 진행한 끝에 최종적으로 18명이 선정되었다. 놀라운 일은, 미국에 있지도 않았던 김재관에게 KIST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느냐고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KIST의 제1호 해외유치과학자 18명 중 미국이 아닌 국가의 유학생은 김재관이 유일했다. 그 배경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다. 다른 과학자들은 모두 KIST에서 선발하고 영입했지만 유일하게 김재관은 박정희 대통령이 최형섭 박사를 통해 직접 불러들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뮌헨에서 김재관을 만난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은 바로 철강산업. 독일 방문 때 한국에 가장 시급한 철강산업 계획안을 전달한 36세의 유학생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김재관은 제1호 유치과학자가 되었다. (3. 홍릉의 과학자들, 88~89쪽) 일본과의 협상이 다시 시작됐다. 일본 측 철강 전문가들은 최첨단의 전 공정 생산공장 설립을 요구하는 김재관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실제로 철강재 생산의 전 과정을 아는 전문가만이 요구할 수 있는 사항을 전부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철강공장을 세워야만 장차 독일이나 일본의 철강산업과 어깨를 견줄 수준이 될 수 있었다. 한국에 김재관과 같은 세계적인 철강 전문가가 있다는 사실에 일본 측은 놀랐고, 결국 김재관의 해박한 철강 지식에 굴복하고 한 발 물러섰다. 김재관의 승리였다. 제철소 공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종합제철 건설 에 관한 우리나라 전문가는 단 한 사람, KIST의 김재관 박사뿐이었다. 조강 베이스 103만 톤, 용광로 1호기, 압연공장, 후판공장 등 초기 주요 시설의 배치 역시 김재관 박사가 직접 포항에 내려가 허허벌판 대지 위에 도면을 보면서 박은 말뚝들이 표준이 되었다. 김재관의 신사업계획은 향후에 500만 톤 이상의 규모로 제철소를 확장할 것에 대비하여 공장 배치를 설계함으로써 새로운 공장을 추가로 건설할 경우에도 기존 공장의 조업이 지장을 받지 않도록 했다. 신사업계획의 공장배치도가 20년 뒤 1989년 시점에서도 별다른 변경 없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훗날 이 분야 전문가들은 김재관 박사가 설계한 포항종합제철소의 계획에 대해서 놀라게 된다. (4. 꿈이 현실이 되다, 129~131쪽) 정주영은 동생 정세영과 함께 정부종합청사로 들어가 김재관 차관보와 마주 앉았다. “정 사장, 정주영 회장께서 우리의 숙원 사업이었던 조선을 시작했으니 정 사장은 우리 고유의 자동차를 만들어 내야 하지 않겠소? 차를 만들자면 우선 금형 값이 많이 들 텐데, 금형 값을 절약하려면 모델을 변경하지 않는 차를 만드세요. 충분한 지원은 못 되더라도 정부가 해 줄 수 있는 지원은 최대한 해 드리겠습니다.” 금속 전문가다운 김재관의 제안이었다. 자동차산업의 핵심은 금형이다. 독일의 명문 대학에서 금속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가의 제안이어서 정주영은 믿음이 갔다. 약속 자체도 구체적이었다. 형제는 김재관의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 정주영이 말했다. “차관보님, 우리가 해보겠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해보겠습니다.” 세계를 주름잡을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6. 100년을 내다본 자동차산업 구상, 179~180쪽)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오전에 충북도청 순시를 마치고 충남 당진 삽교천방조제 완공식 현장으로 이동하던 중 갑작스럽게 대덕연구단지 종합상황실을 방문했다. 종합상황실을 나선 박정희 대통령은 느닷없이 한국표준연구소를 향했다. 공식적인 예고나 특별한 경호원도 없이 김계원 비서실장과 차지철 경호실장만 대동했다. 대통령은 김재관 소장에게 연구소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묻고, 관내 연구시설들을 돌아본 후 같이 식사하자며 김재관 소장에게 차에 타라고 했다. 대통령은 연구소 안에서는 이것저것 묻는 말이 많았으나 막상 차 안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졌다. 대통령은 헤어질 때 뭔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김재관의 손을 잡고 얼굴을 한참 보다가 손을 놓고 헬기를 타고 떠났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7. 선진국 진입의 기반, 국가표준, 212~214쪽) 김재관은 일제시대에 태어나 대학 재학 중 6·25 동란을 만났고, 1956년 서독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도독, 뮌헨 공대와 데마크 철강에서 철강, 금속학, 재료공학, 공업경영 등을 연구하고 현장 경험을 쌓은 후 한국 산업과 과학계의 발전을 위해 귀국하여 KIST 제1연구실장,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 상공부 초대 중공업차관보, 한국표준연구소 초대 소장 등을 지내며 국가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8. 죽는 날까지 나라 사랑, 233쪽) 박정희 대통령, 정주영 회장과 함께 ‘한강의 기적’을 기획한 김재관 박사. 이 책은 한강의 기적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기획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숨겨진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 100년을 바라보며 기획한 한국의 철강, 자동차, 조선, 그리고 국가표준. 한 과학자가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음을 이 책은 밝혀 주고 있습니다. (추모와 추천의 글, 김명자 전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ㆍ전 환경부장관, 254쪽)

  목차

한국경제 ‘기적의 역사’는 어디서 시작되었나 제1장_ 철에서 미래를 발견하다: 6·25전쟁과 독일 유학 준비 대학 첫해에 찾아온 전쟁 / 부산 전시연합대학 / 미군 통역하다 특수강에 눈떠 / 다시 서울로 / 산업은행과 독일 유학 시험 동시 합격 / “산업은행 월급 받으며 유학 가라” 제2장_ 대한민국의 100년 미래를 준비하다: 독일 유학과 박정희와의 첫 만남 DAAD 장학 프로그램 / 독일의 철강산업 / 뮌헨 공대 / 세계적인 석학을 놀라게 한 박사학위 논문 / 뮌헨에서의 만남 그리고 결혼 / 퇴수회와 재독한인회의 탄생 /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 / 무산된 종합제철소 프로젝트 / 박정희 대통령 독일 방문 / 종합제철소 기획안을 대통령 손에 제3장_ 홍릉의 과학자들: KIST 유치과학자 1호 최형섭의 안목 /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연구소 설립 / 11년 만의 귀국 / 대통령의 KIST 챙기기 / KIST 건물을 세우다 / 개발도상국의 새로운 모델 제4장_ 꿈이 현실이 되다: ‘한강의 기적’의 첫 단추, 포항제철 설립 세계가 비웃은 한국의 종합제철소 구상 / “우리 힘으로 종합제철소를” / 미래를 내다본 103만 톤 수요 예측 / 대일청구권자금 협상 최일선에서 / 일본을 한 수 가르치다 / 기본설계 변경 없이 연산 10배로 제5장_ 중화학공업을 일으키다: 「한국 기계공업 육성방안」과 「중공업 발전의 기반」 안보 위협 속 중공업화 박차 / 4대 핵심공장 / 무(無)에서 유(有)를: 조선소 프로젝트 / 국방산업의 기틀을 만들다 제6장_ 100년을 내다본 자동차산업 구상: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 산파역 최초 중공업차관보 / 국산 자동차산업 구상 / “자전거도 못 만드는 나라에서…” / 자동차 기술 독립을 외치다 / ‘자동차 차관보’ / 국민차 포니 제7장_ 선진국 진입의 기반, 국가표준: 한국표준연구소와 국가표준 헌법 표준의 중요성 / 존슨 대통령의 선물 / 한국표준연구소 초대 소장 / 산업화 넘어 선진화로 / 대한민국 시간 독립 /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방문 / 세계 최초로 헌법에 국가표준 명문화 제8장_ 죽는 날까지 나라 사랑: 대한국인 김재관 교단으로 / 국가표준 정착을 위해 / 묄렌도르프와 노르베르트 베버의 재발견 / 그 는 세상을 떴으나, 우리와 함께 있다 우정 김재관 박사 약력 참고문헌 쓰고 나서 추모와 추천의 글_ 이상희·채영복·정낙삼·김명자·신성철

  저자 및 역자 소개

홍하상(洪夏祥) 저 : 홍하상(洪夏祥) 저
전직방송작가이자 논픽션 작가. 1955년 3월 19일 서울에서 출생하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부터는 KBS 출판부 '여성백과' 기자를, 1985년부터는 MBC 교양제작국 작가로 활동하였다. 1991년 3월에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이 되었다. 2004년부터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상인 열전'을 강의하였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각 대학 경영대학원의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강의하였으며, 중앙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다.'상신 리자청', '이병철과 정주영, 카리스마 대 카리스마', '오사카 상인들', '이건희, 그의 시선은 10년 후를 향하고 있다'등의 저서가 있다. 1983년 제1회 한국기행문학상을, 1990년 MBC방송대상 작가상 비드라마부문을, 방송위원회 우수기획상을, 2000년 한국일보 백상 출판문화상을 수상하였다.